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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남북군사회담 무산…북, 대화재개 미루고 미국과 담판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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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 군사회담 제안에 긴 침묵

내달 적십자회담도 먹구름

정부 “회담제안 27일까지 유효”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

북, 남북관계 9년여 단절에

비핵화 전제조건인지 의심

경협도 절실 안해 장고하는 듯



문재인 정부가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열자고 제의한 21일 오후까지 북한은 아무런 공식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다음달 1일 열자고 제의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까지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북쪽이 조속히 우리의 제안에 호응해 나오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후속조처로 지난 17일 정부가 동시 제의한 군사당국회담-적십자회담은 북과 남이 원하는 것을 병렬로 놓되, 북이 원하는 것을 앞세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반응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남북관계에 관한 원론적인 수준의 논평을 내놓은 게 전부다. 전문가들은 북 당국이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이유를 대체로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첫째,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아직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결심’이 서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다르다는 점은 알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선 ‘확신’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거치며 쌓은 남과 북의 신뢰가 지난 9년여 공백기를 거치며 송두리째 사라진 탓이다.

정부가 한-미 공조와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하는 것도 북의 ‘의심’을 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온 이른바 ‘올바른 여건’이나, ‘베를린 구상’에서 언급한 “북한이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다면” 등의 표현을 북으로선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 체제의 특성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두 차례 정상회담을 경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2011년 12월 집권 이래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대화 경험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런 김 위원장에게 남북관계에 대해 조언해야 할 핵심 참모들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짊어져야 할 책임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남북대화 재개에 앞서 ‘탐색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북한이 남북관계 복원 등 이른바 ‘민족 내부 문제’보다 군사·안보 등 체제 유지와 관련된 이른바 ‘근본 문제’에 집중하고 있어 남쪽의 대화 제의에 답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그간 핵 능력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세웠다. 이미 5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 소형화·경량화·규격화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으며,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대미 협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황이니, 북한이 남북관계 복원보다 대미 담판을 우선시할 것이란 관측이다.

북한 경제의 안정화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지난해에만 두 차례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를 통과시켰지만, 북한의 대외무역 규모는 전년 대비 4.7%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으로선 인도적 지원이나 경제협력 등 남북관계를 풀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아주 매력적이진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 상호 적대행위 중단 시점으로 꼽은 이달 27일(정전협정 체결일)까지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날 “기본적으로 27일까지는 대화 제의가 유효하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북이 우리의 제의에 대한 수정 제의를 해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대선캠프 출신의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남북관계가 단절됐던 지난 9년여 동안 북한도, 한반도 주변 정세도 많이 바뀌었다”며 “우리의 ‘선의’만 앞세워 과거의 접근법을 고집할 게 아니라, 달라진 정세에 맞게 북을 설득할 수 있는 ‘문재인식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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