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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도시를 읽다](9) 충북 제천 - 절경 속 문화예술 품은 ‘청풍명월’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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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도시다. 소백산과 치악산, 월악산에 기대어 ‘내륙의 바다’ 청풍호를 안고 있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제천이 문화예술 도시라고요?” 충북 제천 하면 물 맑고 공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문화예술이라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제천시 문화해설사 안길상씨(57)는 “한여름 청풍호를 배경으로 세계 각국의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국제음악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13년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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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진소마을이 떠올랐다. 제천 진소마을은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로 유명하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2000)은 1980~1990년대 한국 현대사를 주인공 영호의 20년 인생사로 압축한 작품이다. 첫사랑, 박하사탕, 오월 광주, 오발탄, 고문, 자살, 철길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혹은 그 기법)…. 꿈과 사랑, 희망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빼앗긴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낡고 오래된 철길로 뛰어들며 “나 다시 돌아갈래” 하고 울부짖던 마지막 장면이 아련했다.

진소마을이 있는 백운면으로 차를 몰았다. 면사무소에서 목적지까지는 10㎞, 차로 20분 거리였다. 해발 200~300m 산들이 병풍처럼 에워싼 길은 어머니 품처럼 아늑했다. 백운산 운악골에서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개울은 장마 덕분에 물이 넉넉했다. 제천시청 김학선 학예사(41)는 “진소마을은 깊고 푸른 강물이 진하게 흐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진소마을은 연꽃 모양을 닮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애련리(愛蓮里)의 끝자락에 있다”고 했다.

갑자기 경적소리가 정적을 깼다. ‘덜컹, 덜컹’ 열차가 긴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터널에서 50m 아래는 영호가 순임(문소리)과의 첫사랑에 가슴 벅차 “나 어떡해”를 부르던 진소천이다. 진소천 변에는 잉어, 메기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보였다.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에 있는 펜션 주인 한기걸씨(58)는 “진소마을은 조선시대부터 한씨들의 집성촌이었는데 인적 드물던 오지가 영화 한 편으로 유명해졌다”면서 “요 위로 가면 문학관이 있는데 외지에서 많이들 찾아온다”고 말했다.

제천은 한강을 둘러싼 전쟁 요충지였다. 삼국시대인 4세기 근초고왕 때는 백제, 5세기 광개토대왕 때는 고구려, 6세기 진흥왕 때는 신라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다. 구한말에는 의병활동의 근거지였다. 천혜의 요새로 불리는 지형을 살려 장회나루에서 국내 처음으로 의병들이 승전고를 울렸다. 일제강점기인 1941년 제천역이 생기면서 교통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충북선과 중앙선, 태백선이 교차하는 제천에 외지인들이 몰려들었다. 1970~1980년대에는 시멘트 회사들이 석회암지대인 제천으로 들어와 불야성을 이뤘다. 2000년대 약초와 한방을 앞세운 자연치유 도시로 알려지면서 지난해에만 220만명이 찾았다.

진소마을에서 1.5㎞ 정도 떨어져 있는 ‘원서문학관’으로 향했다. 새빨간 지붕이 낮은 담장을 뚫고 서 있는 옛 애련초등학교 분교였다. 제천 출신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74)가 10여년 전부터 사라져가던 폐교를 가꾸고 다듬어온 문학공간은 근사했다. 운 좋게 오 교수를 만나 복도 끝 의자와 풍금, 연탄난로가 보이는 교실로 들어섰다. 오 교수에게 낙향 이야기를 청하니 말없이 시집 <우리 동네>를 건넸다. “눈빛과 말품을 보고 안다/ 진짜 뜻은 애당초 말이나 글로는 다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는 ‘그렇지, 뭐’라는 시였다. 문학관 앞에는 350년 된 느티나무가 있었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는 마을사람들의 쉼터다.

진소마을에서 5분쯤 차로 달리면 판화가 이철수가 20여년 전 둥지를 틀었다는 평동리다. 1980년대 폭압적인 사회에 저항의 언어를 보내며 출판 미술운동을 이끈 이 작가는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로고를 판각하기도 했다. 평동리에서 홈페이지 ‘이철수의 집(www.mokpan.com)’을 운영하는데, 아쉽게도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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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신라 진흥왕(540~576) 때 축조된 ‘의림지’를 찾았다.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는 <완당집>에서 “짙게 바른 가을산 그린 눈썹 흡사한데/ 둥근 못은 푸른 유리 골고루 깔았구료”라고 시를 썼다. 안숙은 청풍부사(1802~1803)로 있을 때 글을 짓고 ‘진경산수’ 화가 이방운은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이란 화첩을 남겼는데, 화첩 속에 의림지도가 있다. 의림지는 200년 전 화첩 속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였다.

▶약초 넣은 남자밥·여자밥…참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충북 제천은 월악산과 치악산, 소백산에 다소곳하게 안겨 있는 도시다. 크고 작은 산과 너른 들판에 갖가지 약초가 넘쳐나는 만큼 건강에 좋은 식재료들이 많다.

‘열두달밥상(043-643-0888)’은 가마솥에서 갓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에 민들레와 곤드레 등을 간장에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몸에 좋은 각종 나물류 등 20여가지 반찬을 한상 차림으로 내놓는데 산약초 등 장아찌류는 아삭아삭하고 맛깔스럽다. 새콤달콤한 오미자 차로 입가심을 하면 절로 기운이 솟는다. 박달재 자연휴양림에서 가깝다. 약초밥 정식 1만3000원. 토종 하얀 민들레밥 1만원.

‘대보명가’(043-643-3050)의 대표 메뉴는 체질 맞춤형 약초밥상이다. 원기를 돕는 남자밥과 혈액순환을 돕는 여자밥을 따로 시켜먹는 재미가 있다. 황기, 오가피 등 16가지 산야초와 각종 버섯 등 면역력을 높이는 재료를 수육과 함께 끓여 먹는 약초쟁반이 인기다. 약초밥상 1만5000원, 약초쟁반 6만원.

‘바우본가’(043-652-9931)는 28년간 건강음식을 연구해 만든 약선한정식이 유명하다. 제천에서 자생하는 약초를 사상체질에 맞게 개발해 밥상을 내놓는다. 대표 음식으로는 순채 해물누룽지탕, 순채 샐러드, 돼지고기 수육, 굴보쌈 등이 있다. 성찬정식 1만5000원, 진미정식 2만5000원.

‘산아래’(043-646-3233)의 한방 우렁쌈밥은 친환경농법으로 키운 국산 우렁이에 유기농 한방 재료를 더한 건강식. 쌀, 고춧가루, 마늘, 파도 제천에서 난 것을 사용한다. 농식품부 지정 친환경 우수식당이다. 1만5000원.

‘산채건강마을’(043-653-7788)의 산채정식은 현지 주민이 생산한 야채를 이용한 20여가지 찬이 나온다. 1만5000원.

‘예촌’(043-647-3707)은 곤드레밥과 더덕구이정식이 유명하다. 곤드레밥 1만원, 더덕구이정식 1만2000원.

‘가람식당’(043-651-2264)은 집주인이 직접 낚시해 자기만의 레시피로 만든 어탕, 쏘가리 매운탕이 유명하다. 수산면에서 나는 식재료만을 고집한다. 백련차, 황차(발효녹차) 등 여러가지 차를 서비스로 제공한다. 어탕 8000원, 더덕뽕잎돌솥정식 1만5000원.

‘청와삼대’(043-642-0073)에 가면 3명의 대통령 밥상을 책임졌던 조리장의 족발과 보쌈을 맛볼 수 있다. 10여가지 한약재를 넣어 만든 한방족발은 잡내가 없고 깔끔하다. 느끼함이 없는 명이마늘보쌈도 잘 나간다. 뽀얀 국물이 시원한 칼국수로 마무리하면 하루 종일 든든하다. 명이마늘보쌈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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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 글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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