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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류병학의 사진학교] 36. 사진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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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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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 Malraux et l'idee de 'Musee imaginaire' 1953 ⓒMaurice Jarnoux / Paris Match / Getty Images
말로의 <침묵의 목소리(Les Voix du silence)>(1부로 구성된 '상상의 박물관')을 언급할 때 종종 등장하는 사진이 있다. 말로가 도록들 낱장들을 서재의 바닥에 진열해 놓은 사진이 그것이다. 검정 슈트를 입은 말로는 피아노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물고 도록의 낱장을 보고 있다. 그는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서재의 바닥에 진열된 낱장들의 하나라는 점에서 어느 예술작품을 인쇄한 도판을 그가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서재 바닥에 진열된 도록의 낱장들을 보면 한결같이 예술작품들을 찍은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로는 어느 예술작품을 복제한 도판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머시라? 그가 도판 편집디자인에 대해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요? 뭬야? 그가 인쇄된 상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고요? 혹 그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지 않을까?

"미국의 박물관(미술관)들에 수집된 그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약간 성급하게 이렇게 말했다 : '어항에서 끄집어 낸 물고기들'이라고 말이다. 이는 그와 같은 변모가 보다 많은 물고기를 죽음보다는 불멸로 이끌었다는 점을 망각하는 것이다."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발레리 프루스트 미술관(Valery Proust Museum)>(1967)에서 '미술관(museum)'과 '무덤(mausoleum)'의 발음상의 유사성을 들면서, 미술관을 '미술작품의 가족무덤(the family sepulchres of work of art)'으로 불렀다. 하지만 말로는 미술작품이 가족무덤에 '생매장'되면서 '불멸'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말로가 보고 있는 것은 박물관에 소장된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박물관에 소장할 수 없는 미술작품들까지도 사진으로 촬영하여 도록에 인쇄한 도판들이다. 그 도판들로 이루어진 도록은 말로에게 '상상의 박물관'이다. 그렇다면 말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림들과 조각상들을 모아 놓는 상상의 박물관이라는 방대한 공간은 예술의 전례 없는 지적 작업을 통해서, 그리고 이런 작업이 수행하는 소속들 - 예술작품들이 소속됐던 그 소속들 - 의 파괴를 통해서 실재 박물관들의 변모의 방향을 결정짓고 있다."

말로는 예술의 전례 없는 지적 작업을 통해서, 즉 예술작품들을 '생매장'시킨 박물관의 (상상적) 파괴를 통해서 그리고 박물관에 '생매장'시킬 수 없는 예술작품들까지 소장하는 상상의 박물관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변모가 신성불가침한 것, 신앙, 비현실적인 것, 혹은 현실적인 것과 같은 세계들에 동시에 대체한 이 세계에서, 예술가들의 새로운 참조영역은 각자가 지닌 상상의 박물관이다. 그리고 예술의 새로운 참조영역은 모든 사람들이 지닌 상상의 박물관이다."

앙드레 말로는 '벽 없는 박물관'을 '상상의 박물관'으로 명명했다. 왜냐하면 상상의 박물관은 죽은 유물에 생명력(상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오잉? 그럼 숀 레비 감독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영화화한 것이 아닌가?

1950년대 앙드레 말로는 사진으로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했다. 만약 말로가 1990년대에 살았다면, 그는 무엇으로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했을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는 PC로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했을 것 같다. 만약 말로가 2000년대에 살았다면, 그는 무엇으로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했을까? 혹 그는 모바일로 상상의 박물관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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