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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LCC로→중국으로… 조종사 구인난에 무한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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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내 한 저비용 항공사(LCC)는 대형 항공사 기장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신참 조종사인 그의 아들까지 채용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당시 '아들 특혜 채용' 논란이 있었지만, 업계에선 '1+1 채용'까지 해야 했을 만큼 조종사 구인난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미국 시애틀 지역 항공사인 호라이즌항공은 다음 달 운항하기로 했던 항공편 6%(1만1400편 중 700편)를 지난달 말 돌연 취소했다. "조종사가 부족해 일정을 다 소화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호라이즌항공은 "회사는 급성장하는데, 조종사 이직으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며 "연내 300명을 채용할 계획이지만 쉽지는 않다"고 밝혔다.

국내외 항공업계가 조종사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항공 시장은 급성장하는데, 숙련된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려 수급이 깨졌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LCC·중국, LCC→중국으로 이탈

지난달 말 국토교통부에서 맹성규 2차관 주재로 국내 8개 항공사 CEO(최고경영자)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CEO들은 하나같이 "조종사 부족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읍소했다. CEO들은 기장을 빼가는 '공동의 적'으로 중국을 지목했다. 또 대형 항공사들은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부기장을 빼내간다는 하소연도 쏟아냈다.

조선비즈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한국 조종사 블랙홀'이 되고 있다"면서 "연봉 1억5000만~1억7000만원 정도를 받는 국적 항공사 기장들에게, 중국 항공사들은 3억~3억5000만원 연봉과 파격 복지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 한국인 조종사는 2013~2015년 80~100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2배인 203명으로 급증했다. 중국 내 외국인 조종사 중 최대 비중(20%)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에선 부기장의 이탈도 심각하다. 한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LCC들이 '기장 승진'을 제안하며 숙련된 부기장들을 스카우트한다"며 "비행 경험은 충분한데 승진을 못 하고 있는 부기장들이 집중 표적이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형 항공사에서 이직하는 조종사 수는 2012~2014년 20~30명 수준이었지만, 최근 2년간 연 160명 수준으로 늘었다.

LCC 업계 입장에서는 조종사를 뺏고 빼앗기는 형국이다. 스카우트돼 온 대형 항공사 부기장들이 LCC에서 기장 경험을 쌓은 뒤 다시 처우가 더 좋은 중국 등 해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조종사들이 제주항공 18명, 진에어 31명, 에어부산 19명, 이스타항공 21명, 티웨이항공 10명 퇴사했다.

조종사 쟁탈전이 야기한 '공군 조종사 빼가기'는 국가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의무 복무 기간 15년을 채운 공군들이 처우가 좋은 항공사로 떠나면서, 공군 전투력이 약화되고 조종사 1명을 양성하는 데 들인 120억~150억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종사 해외 스카우트 지원 등 특단의 대책 필요

국적 항공사 조종사는 2010년 3800명에서 2014년 5000명을 넘겼고, 지난해 말 5600명까지 급증했지만 여전히 수요 대비 부족하다는 것이 업계 얘기다. 미국 보잉사는 향후 20년간(2015~2034년) 아시아 지역에서 22만6000명(연평균 1만1300명)의 조종사가 새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중국의 항공 교통량은 20년간 4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중국의 '빼가기'도 심해질 전망이다.

여객기 조종사 자격증은 공군·항공대·해외 유학 등으로 비행 시간 200시간을 채우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부기장을 채용할 때 자격증뿐만 아니라 비행 경험 250~1000시간과 제트기 경험을 요구한다. 또 기장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3500~4000시간 비행 경험을 요구한다.

한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숙련된 기장급 조종사 부족이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신참 조종사 인력을 많이 양성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며 "우리도 외국인 조종사를 적극 스카우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외국인 조종사 고용비자 조건 완화 등 단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특단의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정 기자(wel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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