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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시급 6700원 받는 기사들, "휴식시간? 저녁밥이 첫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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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에 올라탄 버스의 계기판 바늘이 시속 110㎞를 오르내렸다. 경기도의 북오산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길에는 ‘위험, 사고 발생지역, 시속 50㎞ 제한’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지만 버스는 시속 80㎞로 달렸다.

10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와 서울 사당역을 오가는 광역버스 M5532에 탔다. 전날 서울 양재IC 인근 고속도로에서 앞에 가던 승용차를 덮쳐 신모(58)씨 부부를 숨지게 한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다. 운전기사 김모(64)씨는 “배차 간격을 맞추기가 빠듯하다. 조금이라도 더 쉬기 위해 속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운전대를 잡은 그는 껌을 씹고 창문을 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졸음을 쫓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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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고속도로로에서 두 명이 숨지는교통사고를 낸 M5532 광역버스 노선도.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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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사고를 냈던 김모(51)씨의 소속 운수회사인 경기도 오산시 ‘오산교통’에서 만난 그의 동료는 “김씨는 10년 넘게 버스 운전대를 잡은 베테랑이었다”고 말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세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시내버스와 좌석버스를 몰다 경력을 인정받아 고속도로를 오가는 M5532의 운전석에 앉게 됐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그는 “졸음 운전이 아니었다. 과로로 인한 피로가 누적돼 정신을 깜박 잃었다”고 경찰서에서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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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광역버스 운전기사가 10일 빗길을 달리고 있다.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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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이틀 일하고 하루 쉰 뒤 다시 이틀을 일하는 방식으로 근무해 왔다. 사고를 낸 날은 연속 운행 둘째 날이었다. 운행 첫날엔 오전 5시 첫 차를 시작으로 오후 9시5분 마지막 차까지 여섯 타임을 근무했다. 한 타임, 즉 한 번 왕복하기까지는 평균 2시간 30분이 걸리니 산술적으로 15시간을 근무한 셈이다. 그날 오후 11시 40분쯤 퇴근해 자정 넘어 집에 들어갔다. 사고 당일 7시 15분 첫차를 몰기 위해 오전 6시쯤 집에서 나섰다. 그는 “어제는 다섯 시간 정도 자고 일을 나갔다”고 말했다.

오산교통 인근에 있는 운수회사 기사들은 “이틀 근무하고 하루 휴식하는 근무 패턴의 회사가 많지 않다. 대개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는 형태다”고 말했다. 사고를 낸 김씨의 동료들은 “딸 셋을 키우려면 돈이 더 필요해 이틀 근무 후 하루 휴식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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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교통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들.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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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교통 관계자는 “비정규직 기사는 시간당 최저임금인 6470원을 받고, 정규직은 시간당 6700원을 받는다. 사고를 낸 김씨는 정규직이라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근 회사에 근무하는 한 기사는 “우린 하루 근무 하루 휴식에 시급 7400원이다. 오산교통이 유독 근무여건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결국 시급이 낮아 이틀 근무 후 하루 휴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틀 근무 후 하루 휴식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단체 협약으로 맺은 사항이고, 기사들도 계약 당시 이를 알고 회사에 들어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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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고 없는 날' 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 오산교통 차고지.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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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따르면 모든 버스기사는 2시간 근무시 15분 이상을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오산교통 측은 “2시간 이상 4시간 미만 근무시 15분간의 휴식 시간을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들의 얘기는 달랐다. 오후 4시 차고지 식당에서 기자를 만난 버스기사 양모(63)씨는 “비가 많이 내리고 운행이 늦어져 제대로 쉬지도 못해 점심도 못 먹었다. 하루 첫 끼가 저녁밥이다”고 말했다. 이날 버스를 운행하다 차량 고장이 나서야 들어와서 쉬는 중이라는 버스기사 최모(55)씨도 “허울 뿐인 법을 뭐하러 만들어놓는지 모르겠다. 오래 이 일을 했지만, 이렇게 못 쉬고 힘든 일도 없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M5532번은 버스 5대가 해당 노선 전 시간대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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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에 뒤늦은 점심 식사를 하는 오산교통 소속 기사들. 여성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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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교통 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의 한 관계자는 "운수업체에 과실이 있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수사할 계획이다. 진술 외의 부분을 확보하기 위해 압수수색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식 시간은 제대로 보장했는지 등 버스 기사들의 근로 형태를 집중적으로 따져볼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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