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런던 화재 아파트 22층 탈출기···"계단이 끝없이 이어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뉴시스

흉물 돼 버린 런던 그렌펠 타워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숨을 내 쉴 때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어요.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계단은 도무지 끝이 나질 않았어요."

영국 런던 그렌펠 타워 화재 생존자인 나오미 리(32)는 2일(현지시간) 일간 데일리 미러에 건물 상층에서 계단을 통해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후기를 풀어놨다.

리는 지난 14일 새벽 그렌펠 타워에 불이 났을 때 친척 리디아 랴오(23)과 함께 건물 22층에 머물고 있었다. 그렌펠 타워는 24층짜리 아파트로 22층은 건물 꼭대기나 다름 없었다.

리와 랴오는 한밤중 불길을 발견하고 소방서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들은 화재 대처 요령에 따라 일단 실내에 머무르라고 지시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구조를 기다리던 두 사람은 아랫층에서 불길이 빠르게 위로 번져 오는 모습을 보고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함을 직감했다.

리는 방을 나서기 전 출장을 가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탈출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랑해요"라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인사를 건냈다.

리와 랴오는 우선 젖은 수건과 겉옷으로 얼굴을 감쌌다. 검은색 연기가 방안을 점점 채우고 있었다. 둘은 몸을 낮춘 뒤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

리는 "30초에서 1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 데도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짙은 연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희미한 불빛만이 보였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격려하며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리는 "리디아가 뒤따라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 층을 내려올 때마다 이름을 불렀다"고 설명했다.

리디아가 계단에서 구르면서 비명을 내지르기도 했다. 리는 "어서 일어나야 한다고 다그쳤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밑으로 내려가는 데 집중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시신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앞으로 나아갔다. 리는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결국 5~6층까지 내려왔고 이 층에서 소방관들을 만나 무사히 구조됐다. 리와 랴오는 22층에 살고 있던 주민들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추정되고 있다.

그렌펠 타워 화재로 현재까지 최소 80명이 사망했다. 화재 당시 건물에는 총 120가구, 주민 400~600명이 머물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일각에선 사망자 수가 100명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ez@newsis.com

뉴시스 SNS [페이스북] [트위터]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