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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일선 판사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오히려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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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대법원장 ‘법관대표회의 의결’ 반쪽 수용



경향신문



양승태 대법원장이 28일 사법개혁 저지 의혹의 핵심인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를 거부하면서 법원 일각에서는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양 대법원장이 이날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수용한 것에 대해서는 사법부 개혁의 한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반응도 나온다. 법관대표회의는 양 대법원장의 발표에 대해 내부통신망을 통해 입장을 정리한 뒤 공개할 예정이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추가조사를 거부하면서 지난 4월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양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해서는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을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며 “비록 그 결과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에 대해 다시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블랙리스트가 보관된 것으로 지목된 컴퓨터를 사용한 판사가 조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근거로 내세웠다. 양 대법원장은 “컴퓨터에는 해당 법관이 생성한 자료 외에 전임자 또는 다른 법관들이 작성한 문서가 있을 수 있고 비록 후임자에게 업무상 인계했더라도 공개를 전제로 하지 않은 자료나 개인적 아이디어 수준의 메모나 미완성 상태의 문서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법원 관계자는 “지난 4월 진상조사보고서가 부실하고 신뢰하기 어려워 전국에서 판사회의가 열렸고 법관대표회의로 이어져 압도적인 찬성으로 추가조사를 결의했다”며 “이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다시 보고서를 믿으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법원 관계자는 “핵심은 추가조사인데 제한적 조사 허용도 아닌 전면 거부를 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만 짙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 진상조사위 조사 때도 대법원의 거부로 해당 컴퓨터를 검증하지 못하고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이 때문에 법원 일각에서는 오는 9월 양 대법원장 퇴임 때까지 추가조사를 못하더라도 나중을 위해 자료폐기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양 대법원장이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수용함으로써 사법부는 법원행정처를 대체할 기구와 제도를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데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일선 판사들의 대표 회의체가 상설화되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이에 대해 일선 판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는 양 대법원장이 일선 판사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현재 정치권 등에서 논의되는 ‘외부로부터의’ 사법부 개혁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현재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등은 법원의 인사와 예산을 담당할 독립적 헌법기구인 ‘사법평의회’ 도입 방안을 검토 중이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양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요구, 추가조사 재요구, 양 대법원장 결정 수용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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