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3 (월)

[청춘직설]옆집 개 짖는 소리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 최상층으로 이사했다! 평화롭다. 옆집 개새끼만 짖지 않아준다면….”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여러 댓글이 달렸고 그중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가장 불쾌했던 것은 모르는 사람이 툭 하고 남긴 것. “개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새끼라니… 휴.”

첫째로 난 저 댓글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큰 고민 없이 남겼을 댓글의 의중을 헤아리며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 불쾌했다. 둘째, 그는 생명체에게 ‘새끼’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명제를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의할 수 없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조부모가 오랜만에 보는 손주에게 “아이고 내 새끼”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의 정과 환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클리셰다. 또한 (이참에 살짝 홍보하자면) 내가 청년 당사자로서 참여한, 청년 이슈를 다루는 시선에 대해 문제제기한 책의 제목은 <미운청년새끼>다. 인간도 생명체인데 새끼라는 말을 잘도 붙여왔다. 셋째, 어떤 표현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그것이 나오게 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말을 보태는 것 역시 폭력이다.

옆집 개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짖어대는 소리는 총성을 떠올리게 한다. 옆집 개가 현관에 바짝 붙어 나를 향해 적대적으로 짖어대는 일의 반복은 집 밖에 나가기 전 나를 번번이 머뭇거리게 만든다.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느 날, 옆집 개의 맹렬한 짖음에 심장에 무리가 왔고, 나도 사족보행하며 똑같이 짖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울부짖다시피 옆집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개 좀 안 짖게 해주세요! 집 나갈 때, 들어올 때 매번 깜짝깜짝 놀라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옆집 현관문 안에서 “죄송합니다…”라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누그러지고 미안함마저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날 개는 또 짖었고 나는 또 격분했다.

옆집 개는 가수가 되고 싶은 걸까? 어느 날 새벽에는 인근 건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개와 고양이와 함께 웅장한 삼중창을 수시간 들려주었다. 귀마개 착용도 소용없었다. 불쾌한 시각자극은 쉽게 차단할 수 있고(눈 감고 고개 돌리면 그만), 후각 자극에는 금방 둔감해지는 반면, 청각 자극은 방어하기 쉽지 않고 쉽사리 둔감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환경에서 개를 키우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른다. 내가 사는 집은 5.4평이다. 호별로 평형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건물 전체 크기와 가구 수를 고려할 때 옆집이 아무리 넓다 해도 10평은 되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 적 없는 것으로 보아 좀처럼 산책도 시키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라는 종의 특성상 많이 갑갑할 것이다. 동물을 가족으로 등록하기 위해 일정 이상의 거주 공간 크기가 담보돼야 하고, 인간들은 필수적으로 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독일의 사례를 떠올려 본다. 한국도 도입이 시급하다.

개소리로 고통 받아도 취할 수 있는 공적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녹음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해 민원 어플로 문제 제기를 해도 권고 조치에 그칠 때가 많고, 그것마저 같은 건물에 살 때만 유효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촌에서 바로 앞 건물 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뭘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 민사 소송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걸까.

계속 고민하다 보니 좁은 평형 주택을 부실한 방음 마감으로 지은 시공업체,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허용한 공권력, 한 평의 땅을 독점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서울의 미친 부동산 가격에까지 문제의식이 미친다. 그 점을 고려하면 옆집 세입자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지만, 그래도 그 개는 너무 날뛴다. 동물을 도시에서, 좁은 공간에서 키운다는 것은 동물에 대한 책임감에 더해, 이웃에 대한 책임감까지 요구하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개의 체온을 느끼고 위로 받으며 사랑스러운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당신 이웃은 미쳐가고 있다고요!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