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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롯데,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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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계열사 통합구매·ICT 강화로 변화에 박차

이코노믹리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출처= 뉴시스


2년 동안 계속된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 박근혜 정권과 연결된 비리 연루로 주춤했던 롯데가 최근 주력사업인 유통부문의 변화를 시도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롯데는협의체를 중심으로 한 유통부문 통합, ICT(정보통신기술)를활용한 유통경쟁력 강화에 시동을 걸었다. 유통업계는롯데의 이 같은 행보를 경쟁사 신세계그룹을 견제하는 포석(布石)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롯데의 반격 카드가 신세계를 견제하거나 제압하는 데 효험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협의체’ 중심 구매 통합

롯데그룹은 지난 5일 백화점ㆍ대형마트ㆍ편의점ㆍ홈쇼핑 등 주요 유통 계열사의 상품 구매를 하나로 통합하는 공동구매 체제를 구축한다고 밝혔다.롯데 측은 당시 “유통 비즈니스 유닛(BU) 구매ㆍ조달 담당자들이 모인 소싱(Sourcing, 구매)협의체를 구성했다”면서“계열사들이 공동으로 구매할 때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품목들은 이 협의체를 통해 선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롯데 협의체에는 롯데백화점, 롯데홈쇼핑,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 편의점 세븐일레븐, 헬스&뷰티 전문점 롭스(LOHBS), 온라인몰 롯데닷컴 등 주요 유통 계열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롯데가 공동구매 협의체 구성으로 기대할 수 있는효과는 적지 않다.롯데 측은 유통부문의 ‘경영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애매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업계 전문가 대다수는 구매력(Buying Power) 강화가 가장 기대효과라고입을 모은다. 롯데 역시 이를 인정한다.

롯데관계자는 “통합 구매를 통해회사의상품 구매력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얻은비용 효율을 각 제품의 판매가격을 낮추는 데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전국 8000여개의 편의점, 120여개의대형마트, 33개의 백화점과 아울렛, 복합쇼핑몰 등 거의 모든 유통채널을 통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상품을 사고 파는기업이다.롯데에 제품을 공급해 온 업체들은 그간 개별 계열사와의 1 대 1 협상을통해 납품 수량과 구매 단가를 결정했다.이제 이들은유통계열사 전체의 구매를 결정할 수 있는 협의체 관계자를 협상테이블에서 만나야 한다. 이는 뒤집어보면 납품업체들의 협상력이오히려 약화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유통업의 한 관계자는 “공급업체들이한 번 협상으로 다수의 롯데 유통 계열사들이 원하는 제품들을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어 유리한 점도 있다.동시에 이전과 ‘힘’이 달라진 롯데의 가격 결정권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양쪽이 제시하는 가격 등 공급 조건이 맞지 않아 협상에 차질이 생긴다면 한 계열사가 아닌 롯데 전체에 대한 납품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만큼 롯데의 구매력은 강력해진다”고 지적했다.

카카오뱅크 제휴, SSG페이에 대한 롯데의 반격카드

롯데그룹은 27일 유통계열사들과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와의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협약식에는 롯데쇼핑 임병연 부사장, 코리아세븐 정승인 대표이사, 롯데멤버스 강승하 대표이사, 롯데피에스넷 이찬석 대표 등 롯데의 주요 유통 계열사 총책임자들이 참석했고 카카오뱅크에서는 이용우 공동대표가 나왔다.

서로가 보유한 강점을 공유하기 위한 제휴를 표방하는 자리였지만국내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 롯데가 계열사 총책임자들을 동원해 아직 정식 출범더하지 않은카카오뱅크를 이처럼 환대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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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롯데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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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롯데가 카카오뱅크와의 협약으로 기대할 수 있는 효과가 컸다는 뜻이다. 물론 공식 발표에서는 업무협약을 통해 롯데와 카카오뱅크는 계좌기반 결제모형의 공동 개발, 롯데멤버스 고객 빅데이터-카카오뱅크 금융 데이터의 결합, 롯데피에스넷 ATM(현급지급기)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 활성화 등을 표방했다.속을 들여다보면이번 협약은 다분히 경쟁업체인 신세계의 간편 결제 시스템 SSG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유통-IT업계의중론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2015년 7월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자사의 모든 온ㆍ오프라인 유통채널에서 사용 가능한 간편 결제 서비스 ‘SSG 페이’를 선보였다. 첫 공개 당시 SSG페이는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 채널과 온라인 몰을 하나의 결제수단으로 통합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됐다.

SSG페이 이전부터신동빈 회장이공식 석상에서 모든 유통을 하나로 잇는 ‘옴니채널’을 줄곧 강조했지만 롯데는신세계에 선수를빼앗긴는 뼈아픈 실수를 한 것이다.유통업계 강자 롯데의 자손심이 크게 상할 수밖에 없었다. 절치부심한 롯데는SSG페이 출시 2개월 후인 2015년 9월 통합 간편 결제 서비스 엘페이(L.PAY)를 선보였다.

SSG페이는 출시 약 2년 만에 가입(앱 다운로드)회원 400만명 보유, 7000여개 전국 가맹점과 제휴하는 등으로 급성장했다. 국내 최다 가입자 수를 보유한 삼성의 간편 결제 시스템 ‘삼성페이’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기본 앱으로 제공돼 가입 회원 수 600만명으로 추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SSG페이의 성과는 롯데가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엘페이가출시 후 한 차례 대대적인 서비스 업데이트를 하는 등 분투했지만성과가시원치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엘페이를 운영하는 롯데멤버스가엘페이의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 롯데의 고민의 골의 깊이를 드러낸다.

롯데멤버스 관계자는 “가입자 수를 대외적으로 알릴만한 정도로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았다”면서“서비스 확대 적용으로 이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카카오뱅크가 보유한 가상계좌 및 금융결제 서비스는 롯데에게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아울러 국내 4200만의 회원들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의 서비스 연동 가능성, 글로벌 유통기업 알리바바 ‘알리페이’와 제휴돼있는 카카오뱅크의 인프라는 롯데가 잘만 활용하면 신세계 SSG페이와의 격차를 일순간에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카카오뱅크가 롯데에게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카카오뱅크는 모바일-온라인을 근간으로 한 금융업체의 숙명적 약점인 고객 접점 영업을 롯데를 통해 강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무협약 발표에 포함된 내용이 실현된다면 전국 5000곳의 롯데 오프라인 매장(현재는 주로 세븐일레븐)에 설치된 롯데피에스넷 ATM에서 카카오뱅크 계좌의 입출금이 가능해진다.카카오뱅크는 자연스레오프라인 회원들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아울러 롯데멤버스가 보유한 3700만 회원의 고객 빅데이터를 공유하면 소비자들의 실제 소비유형에 맞춘 금융상품을 구성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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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그렇게 이루고자 한롯데의 옴니채널 또는 O2O는 ICT기술 활용을 통한유통채널 간 연동이 없으면 완성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롯데의 카카오뱅크 인프라 활용은 단순히 신세계를 따라잡는 데서더 나아가 롯데의 온-오프라인 유통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상화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롯데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보들은 신동빈 회장이 늘 강조한‘유통의 통합과 연결’을 통해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면서“앞으로 롯데가 보여주는 변화들은 국내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결정들이 많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잠자던 거인 롯데가 다시 깨어나 경쟁력의 칼날을 갈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롯데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 위치를 감안하면 경쟁사들의 촉각은 곤두서있다. 롯데가업계 최강자의 입지를 다시 한 번 굳히는 성과를 내는 것은 롯데 앞에 던져진 숙제다.반격이 반격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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