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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열'의 중심②] 이준익 감독 "억울한 희생자를 대신해 목숨 던진 이야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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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내가 힘을 내려고, 업(UP) 시키려고 그래. (내가) 박열이야, 박열.(웃음)"

영화 '박열'로 돌아온 이준익 감독이 웃으며 인사한다. 스크린에 구현된 독립운동가 박열의 호기로운 모습은 20년간 박열에 주목해왔던 이준익 감독의 열정과 겹쳐진다.

이준익 감독은 28일 '박열' 개봉을 앞두고 이어지는 여러 인터뷰, 관객들과의 만남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주간 이어진 인터뷰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인 이른 아침, 자신을 찾은 취재진을 반기며 '내가 박열이다'라는 너스레로 분위기를 풀었다.

지난 2015년 '사도'부터 지난 해 '동주', 올해 '박열'까지 3년째 꾸준히 새로운 작품으로 관객을 찾고 있다. "성실이 밑천이다. 내가 무지하게 부지런하다"며 다시 한 번 웃은 이준익 감독은 "심심한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외로울 틈도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을 잇는다.

특히 박열은 20여 년 전인 2000년, 이준익 감독이 영화 '아나키스트'를 제작하며 자료 조사를 하던 과정에서 알게 된 인물이다. 당시 조선의 독립 운동 역사를 다룬 책에 등장했던 수많은 인물 중 박열에 주목하게 됐다.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이었다'고 생각했던 이준익 감독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던 박열을 보며 '나쁜 일본인, 또 억울하지만, 선량한 조선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영화를 그려내고 싶지 않아 더욱 신중하게 접근을 이어갔다. 그렇게 20년을 공들인 끝에 '박열'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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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관점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열'은 엄밀히 따지면 일본 영화에 한국 배우가 나온 것이다. 그렇지 않나?"라고 물음을 던졌다.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박열'의 배경은 일본 도쿄다. 일본 정부가 등장하고, 129분의 이야기 속, 극 설정상 한국 사람은 몇 명 등장하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자신의 시각으로 일본을 대상화해서 보는 틀을 좀 더 넓혀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때문에 엄격한 고증의 필요성은 더 중요했다.

"권력 집단인 내각, 민중에 연대하고 있는 면회 온 사람, 간수, 심지어 '불령사' 안에는 일본인이 6명이 있었다. 100% 도쿄라는 무대 안에서 찍었고, 그 사회의 이면에 다 드러난다. 일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나라의 정부 얘기가 나오는데 더 고증을 따지지 않겠나. 고증이 형편없다고 하면 이 이야기 본질 자체를 부정할 것이고, 특히 그것이 일본 관객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실존 인물입니다'라고 일부러 써놓은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일본의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등에 요청해 1920년대 당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관련된 자료를 모두 받아 꼼꼼하게 살폈다. 당시의 실제 신문과, '박열'을 통해 재현된 사진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리얼리티를 더해냈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은 박열이 스스로 사형을 쟁취해서 억울한 희생자를 대신해 목숨을 던진 이야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이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민란을 막기 위해 조선인을 이용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이에 무고한 조선인 6천여 명이 3일 만에 학살(간토대학살)되자 이것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희생양으로 지목한 이가 박열이었다.

박열은 일본의 부당함을 고발하려 이를 역이용했다.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자백하며 사형으로 가는 대역죄를 선고받기 위해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갔다. 대역사건의 공판이 시작되기 전 도쿄지방재판소 조사실에서 촬영한, 박열이 가네코 후미코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있는 파격적인 사진 역시 철저한 사실이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 치밀하게 계획하고 주도한 증거를 남긴 것이다. 내무대신 미즈노(김인우 분)가 박열에게 "이것까지 네가 계획한 것이냐"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박열은 서구 사법 체계를 흉내내서 자기들의 야욕을 채우려는 일본 제국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역이용해 이를 만천하에 알리려 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아나키스트인 박열과 후미코의 사상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준익 감독은 "아나키즘(anarchism)은 개인의 자유 의지로 평등하게 권리를 주장하는 사상이다"라고 다시 한 번 개념을 되짚었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억압하는 것이 무엇이겠나. 권력이다. 그리고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권력에 저항하는 목표는 자신들이 권력을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그 뒤에 어떤 새로운 권력을 잡겠다는 욕망은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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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의 시 '개새끼'(박열이 1922년 발행한 잡지 '청년조선'에 기고한 작품)에서도 그의 사상을 알 수 있다. 가네코 후미코 역시 마찬가지다. 1926년, 이들이 사형선고를 받은 후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일본은 천황의 은사라는 명분으로 두 사람을 무기징역으로 감형시킨다. 이에 가네코 후미코는 "내가 쟁취한 사형을 감형할 자격을 감히 누가 줬냐"며 천황이 준 은사장을 찢는다.

이준익 감독은 "사실 이 이야기가 과거 식민지 프레임의 틀에서 보면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하며 "박열의 시 '개새끼'를 보고 가네코 후미코는 단숨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생각'으로 사랑했다는 점도 덧붙였다. 감옥에서 자신들을 감시했던 형무소 소장 후지시타 이사부로에게 서신 교환을 부탁하지만, 그는 황태자를 '한 마리'라 표하며 하나의 짐승으로 봤던 이들의 서신 내용을 문제 삼으며 이를 전하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 후지시타를 향해 '우리는 서로의 사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쓴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의 언어다'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이 생각으로 사랑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아니겠나"라고 전하며 "가네코 후미코가 '나는 그의 본질을 알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결점과 과실을 넘어서 박열을 사랑한다'고 말한 것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생각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관객들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영화를 즐겨주고, 다양한 생각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이준익 감독의 마음이다. 이준익 감독은 "관객에게 관전 포인트를 주는 것은 불법"이라며 "관객도 아나키스트 아니겠나. 자유 의지가 있다. 보는 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웃어 보였다.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박지영 기자, 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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