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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내 에코백 속에 넣어두고 싶은 그 맛 맥주야, 여름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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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할 때 서랍 속에서, 혼자서 영화를 볼 때, 아님 공원 산책 중 가방 속에서 시원한 맥주 꺼내서 한잔 했으면 좋겠어.” 맥주를 (없어서) 못 먹는 지인 S양과 더위를 식힐 겸 시작한 맥주 얘기에 100% 공감을 하며 ‘어떤 브랜드가 맛있다더라, 술을 시원하게 넣어 가지고 다니는 가방이 나왔다더라’ 등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결국 말만으론 갈증만 더해져 대형마트와 편의점 맥주 코너를 찾았다. 그리고 평소 쉽게 발견하지만, 선뜻 맛보지 못했던 맥주들을 골라 에코백에 넣었다. 해가 지는 노을 전망과 바람이 잔잔히 부는 남산 산책로.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S양과 맥주를 하나 둘씩 뜯기 시작했다. 아~ 알딸딸… 점점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다.

▶01 Fire Rock Pale Ale

시티라이프

뚜껑을 따자마자 가장 먼저 페일 에일 특유의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가 싶더니, 한입 머금자 곧바로 홉의 쓴 맛과 함께 풍부한 탄산이 몰려온다. 그리고 깔끔한 끝맛까지! S양이 이야기한다. “혼자 있을 때 술 한잔 당긴다? 그럴 때 먹고 싶은 술인데.” 한입 더 마셨다. 나는 유난히 초콜릿이 당겼는데, 홉의 쓴 맛이 생각보다 초콜릿과 잘 어울러질 거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파이어 락 페일 에일은 빅 웨이브(Big Wave)와 같은 하와이산 페일 에일 중 하나다. 홉의 향이나 바디감이 강한 편이 아니라서 남녀노소 선호하는 맛이라고. 2~3모금 마시자마자 입안에선 그윽한 꽃향과 과일향이 맴돈다. 그 어느때 즐겨도 맛이 있겠지만, 운동을 하고 나서 깔끔한 맥주가 고플 때, 이 맛이 그리울 듯하다.

▶02 Maisel’s Weisse Original

시티라이프

마이셀 바이스 오리지널은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밀맥주를 만들어온 바이로이트의 대표적인 제품이다. 곡선 형태의 길쭉한 병 모양이나, 라벨을 보면 상큼한 맛을 기대하게 한다. 그런데 S양은 한 모금 마시자마자 기함했다. “아… 탄산이 너무 강하다! 끝맛은… 의문부호인데?” 그녀의 말에 오히려 첫맛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부랴부랴 한 모금 마시자마자 과실향의 단맛과 함께 탄산이 어우러져 첫 맛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S의 말마따라 탄산이 강해 밀의 풍미나 특유의 향이 조금은 묻혀 뒤늦게야 맛이 남는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마실 수 있다. 무엇보다 마이셀 바이스 오리지널의 부드러운 목 넘김은, 맥주 CF 속 배우들처럼 시원한 아이스 박스 안에서 꺼내 마시고 싶은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03 EICHBAUM RED BEER

시티라이프

다음으로 고른 맥주는 ‘신상품’이란 판촉물에 혹했더랬다. 독일 맥주인 아이바움 레드 비어가 주인공. 사전 정보가 별로 없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도전했다. 따자마자 ‘탁!’ 소리가 나며 캔 안에 꽁꽁 묶여 있던 거품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뿜어져 나온다. 부랴부랴 입부터 내밀어서 거품을 맛봤다. 부드러운 거품 사이로 은은한 캐러멜 향기가 난다. 시원한 맛이 못내 그리운 이들도 충분히 만족시켜주는 향이니 실망하지 말 것.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흑맥주 특유의 씁쓸한 맛이 입안 언저리에 먼저 느껴진다. 조금씩 그 맛을 음미하자 뒤이어 구수한 맥아 향이 맴돈다. 진한 맛이 특징인 기네스 흑맥주보다 부드럽고 라이트한 느낌의 체코의 대표 맥주 코젤을 선호한다면, 언뜻 이 맛이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을 듯 싶다.

▶04 Twisted Manzanita Ales Chaotic Double IPA

시티라이프

맨자니타 케이오틱 더블 아이피에이는 순전히 라벨만 보고 선택한 맥주다. 그런데 높은 도수에 한번 놀라고, 생각보다 단맛에 두 번 놀랐다. “설탕이 포함돼 있는데? 그래서 도수가 높은 거 같다”는 S양의 설명을 들으며 나도 한 모금 더 마시기 시작했다. “아… 세다…. 기존에 먹던 IPA가 일반 커피라면 얜 TOP다.” 내 말에 S양이 크게 웃으며 동의를 표했다. 맨자니타 케이오틱 더블 아이피에이는 앞서 먹은 파이어 락보다 몰티한 냄새가 나는데, 나중에 취기가 한 번에 몰려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홉의 향이 천천히, 무겁게 다가온다). 색은 일반 라거류보다 진한 편이다. 맛이 너무 강해 오히려 평상시보다는 마감을 마친 후나, 비 오는 날 창가 테이블에서 마시고 싶은 느낌이다. 병 위에 붙은 라벨 속 회색도시 뒤로 홉의 쓴 맛 뒤로, 풍부한 색의 과일향이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반전이 있다.

▶05 Leffe Brune

시티라이프

벨기에 맥주 중 호가든과 스텔라 아르투아 못지 않게 맥주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술이 바로 레페다. 국내에 유통되는 레페는 2종류로, 에일 맥주 브론드와 흑맥주 브라운이 있다. 이번에 에디터가 고른 것은 레페 브라운, 흑맥주다. 잠깐 레페의 역사를 설명해보자면 레페는 1240년, 벨기에 남부에 위치한 성당의 수도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맥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때문에 레페 전용 고블릿(Goblet) 잔에는 벨기에의 성당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맛을 보기 시작했다. 갈색의 은박지가 뚜껑을 감싸고 있는데 이는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라면야! 뚜껑을 따자마자 달달한 향이 훅 풍겨온다. 일반 흑맥주보다 짙은 색으로, 거품 너머 술이 한차례 들어오자 마치 산미감 있는 커피를 마신 것처럼 씁쓸하면서도 은은한 캐러멜 향이 마치 향수의 잔향처럼 확고하게 남는다. 개인적으론 에디터는 레페에서 느껴지는 제 각각의 맛이 뚜렷해 친해지기 어려웠다면, S양은 풍성하면서도 잘 잡힌 밸런스 향에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서로 다른 시식 후기였지만, 마지막 느낀 감정은 동일했다. “아… 벨기에…. 여행가고 싶다!!”

[글과 사진 이승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85호 (17.07.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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