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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지평선] 문재인 내각의 기형적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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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8일 조간신문에 일제히 게재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8일 만에 처음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앞서 이낙연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사진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사진에 유독 관심이 간 이유는 대통령과 함께 앞줄에 선 장관들과 달리, 뒷줄로 밀려나 남의 집에 온 것처럼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사람들 때문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장관들로, 문재인 정부 첫 국무회의 정족수를 채워주기 위해 ' 징집'된 사람들이다.

▦ 이날 국무회의 참석멤버 17명 중 10명이 박 정부 사람들이다. 문 정부 출범 한 달이 넘도록 신ㆍ구 내각의 '기형적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연출한 시점이 묘하다. 문 대통령이 방미 순방 길에 나서기에 앞서 내각의 긴장감을 높이려는 뜻은 이해된다. 반면 송영무 국방부장관 김상곤 교육부장관 조대엽 노동부장관 후보자 등 야당이 벼르는 빅3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이른바 '슈퍼 위크'를 의식했다는 느낌도 있다. 인사 공백의 현장을 보여줌으로써 야당 압박과 여론 지지를 동시에 노린 '기획' 같다는 것이다.

▦ 문 대통령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도 불투명하던 지난달 26일 박 정부 때 임명된 국무위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정권은 유한하나 조국은 영원하다" 고 말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요구에 따라 개각은 불가피하지만 여러분도 엄연히 문재인 정부의 장관"이라며 국정 운영의 연속성과 원활한 업무 이양을 강조하면서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이 정부의 장관이 아니었다. 뭐 씹은 듯한 얼굴로 자리조차 찾지 못하던 그들이 국무회의 내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 이랬으면 어땠을까. 멋쩍어 뒤로 물러나려는 그들을 앞줄에 세워 새 장관들과 섞이게 하고 어깨를 토닥거리며 후임이 올 때까지 새 정부의 국정 철학과 함께 해달라고 당부하는 것 말이다. 사실 이런 속도와 논란이라면 이 정부의 첫 조각은 여름 내내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문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엉뚱한 얘기라도 좋으니 대통령과 총리의 의견에 언제든 이의를 제기해 달라"고 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처럼 받아쓰기ㆍ계급장ㆍ결론 없는 '3무 회의' 원칙을 국무회의에도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뒷줄에 선 그들이 이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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