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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사우디 로비업체도, 바레인 외교관도, 미국석유협회도 이곳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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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텔에 지지층,로비스트, 외국 정부 몰려

내부엔 대형 성조기, 식대는 주변 두 배 육박

권력 줄대고 성의 표시하는 합법적 공간 논란

중앙일보

대형 샹들리에가 늘어선 워싱턴내 트럼프 호텔의 1층 로비[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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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현지시간) 정오 워싱턴 시내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은 다양한 사람들로 붐볐다. 입구에선 백인 중년 부부가 호텔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었다.

백악관에서 직선거리로 850m, 도보로는 15분이면 족한 이곳은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에겐 들러야 할 명소다. 동시에 타임지,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공화당 인사들, 정치권을 후원하는 ‘큰 손’들, 전 세계 외교관과 사업가들, 전직 트럼프 캠프 인사들, 때론 정부 공직자들까지 몰리는 곳이다. 트럼프 정부에 줄을 대려는 인사들과 트럼프 대통령을 돕는다는 인사들이 모이는 집합소다.

로비에 들어서자 대형 TV 화면 중 하나엔 마침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왔다. 내부 벽면에 거대하게 걸려있는 성조기와 화려한 샹들리에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로비가 내려다보이는 2층 레스토랑에 앉자 점심 메뉴 가격이 주변의 보통 식당의 두 배에 가깝다. 세 명이 햄버거와 콜라 등을 먹었을 뿐인데도 식대는 130달러나 됐다. 로비의 바는 더 비싸다. ‘트럼프 타워’라는 해산물 안주 가격만 120달러다. 레스토랑 여직원에게 “이곳에 오는 유명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주로 정치인들”이라며 “최고의 유명인은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바깥에서 저녁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은 워싱턴에선 이곳이 유일하다. 여직원은 “얼마 전 이방카가 와서 저쪽에 앉았다”며 “구석 쪽이라 외부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선을 2주도 남기지 않았던 지난해 10월 26일 이 호텔이 문을 열었다. 그날 트럼프 후보는 선거운동을 잠시 중단하고 에릭, 트럼프 주니어, 이방카, 티파니 등 아들과 딸을 모두 이끌고 개장식에 참석했다. 당선자 시기인 지난 1월 18일 밤엔 호텔을 깜짝 방문해 비공개로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재선을 위한 모금 파티를 여는 곳도 이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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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텔은 옛 우체국 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0월 개장했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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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정치를 왜곡하는 로비를 근절하겠다며 “늪(로비)을 말려버리겠다(drain the swamp)”는 구호로 민심을 얻었다. 하지만 타임지는 트럼프 호텔을 “새로운 늪”에 비유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말까지 사우디아라비아가 고용한 로비 업체는 이 호텔에서 숙박ㆍ식사비 등으로 27만 달러를 썼다. 미국 의회가 테러 피해자들이 해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자 당사국인 사우디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외교전에 나섰던 시점과 일치한다. 지난해 12월엔 바레인 외교관들이 이 호텔에서 국경일 행사를 열었다. 쿠웨이트는 매년 2월 워싱턴에서 열어온 연례 행사를 위해 포시즌 호텔을 예약해 놓고도 실제 행사는 트럼프 호텔에서 치렀다. 한 공화당 인사는 타임지에 “호텔은 조공을 바치는 어리숙한 외국 정부와 회사들을 당기는 자석”이라고 말했다. NYT 역시 지난 16일 “해외 인사와 로비스트를 끌어당기는 자석”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호텔은 국내 지지층과 지지 업체들의 규합 장소이기도 하다. 대선 때 트럼프를 공개 지지했던 보수파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는 당초 워싱턴내 메이플라워 호텔에서만 국제 종교 행사를 열려다 대선 두달 후 트럼프 호텔을 연회 장소로 추가했다. 지난 5월, 행사의 연회 때 메이플라워 호텔에 묶던 귀빈들을 트럼프 호텔로 실어 날랐다.

트럼프 정부의 싱크탱크로 간주되는 헤리티지재단은 지난해 12월 연말 모임을 트럼프 호텔에서 열었다. 재단을 후원하는 큰 손들을 호텔에 모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기조 연설을 들려줬다.

미국 석유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석유협회(API)는 지난 3월 이사회 모임을 이 호텔에서 열었다.

CBS에 따르면 이 호텔은 ‘트럼프 세상’의 유명 인사들을 예상치 않게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이 호텔을 찾았다가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캘리언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을 만나 사진을 찍곤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스파이서 대변인은 지난 1월 “정말로 대단한 호텔”이라며 “들른 적이 없다면 가서 보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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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내 트럼프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성조기부터 눈에 들어온다.[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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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대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자기 소유의 자산을 처분하거나 백지 신탁에 맡기는게 관례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사업 운영에선 손을 뗐지만 소유권 자체는 포기하지 않았다. 2016년 재정 신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호텔을 통제하는 유한책임회사의 지분 76.7%를 갖고 있다. 이달 공개된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 변동 내역에 따르면 이 호텔은 개장 이후 2000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무엇보다도 이 호텔 자체가 논란거리다. 당초 정부 소유인 옛 우체국 건물을 ‘트럼프 오거나이제이션’이 호텔로 재개발해 60년간 임대했다. 대선 직후 연방조달청(GSA)은 선출직 공직자가 임대 계약에 참여하거나 이 계약으로 이득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지난 3월 "문제가 없다"고 말을 바꿨다.

논란은 그래서 계속된다. 대통령의 권력에 줄을 대고 대통령의 사람들을 만나려는 국내외 인사들에게 트럼프 호텔은 ‘성의’를 표시하는 합법적 창구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이는 대통령직을 개인적 이득을 취하는데 활용하는 것이어서 ‘이해의 충돌’에 해당된다는 비판을 부른다. ‘책임과 윤리를 지키는 워싱턴 시민들(CREW)’이라는 진보 단체는 이 호텔은 대통령의 헌법 위반에 해당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코크 와인 바’라는 워싱턴의 식당은 트럼프 호텔 레스토랑이 불공정한 경쟁력으로 운영된다며 소송을 냈다.

그럼에도 권력은 사람을 끌어 모은다. 레스토랑의 여직원은 “믿건 안 믿건(believe or not) 민주당 성향의 모임도 많이 열린다”며 “대부분 비즈니스를 위한 모임”이라고 답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채병건 기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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