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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삶의 향기] 불협화음의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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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유발하는 불협화음은 음악의 필수적 동력이지만

절차 무시된 불협화음은 음악의 수준과 흐름 해칠 뿐

중앙일보

이건용 작곡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불협화음은 긴장을 만든다. 그 긴장을 풀면서 음악은 진행한다. 음악은 불협화음에서 동력을 얻는다. 마치 장난감 자동차가 조여진 태엽에서 동력을 얻듯.

서양에서 아직 3화음 화성이 체계화되기 전 작곡가들은 선율들을 겹쳐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른 음과 협화를 이루지는 않지만 음악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음’들이 있음을 알았다. 조심스럽게 잘 다루기만 하면 아주 효과적인 음들이었다. 후에 이 음들을 비화성음이라고 불렀는데 가장 사랑을 받았던 것이 계류음이다.

계류음은 말 뜻 그대로 어떤 음이 늦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 성부가 ‘도미솔’에서 ‘솔시레’로 진행을 했는데 ‘도’만 제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솔도레’라는 불협화음이 생긴다. 불협화음은 긴장을 낳고 긴장은 해결을 기다린다. 늦게야 ‘도’가 ‘시’로 진행한다. 그러면 마치 고대하던 무엇이 나타나는 듯한 해소감을 느끼게 된다. 느린 곡에서 특히 가치를 발하는 이 비화성음은 르네상스음악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다.

그 반대도 있다. 어떤 음이 성급하게 먼저 다음 화음으로 가는 예상음이다. ‘솔시레파’에서 ‘도미솔’로 진행하는데 ‘레’만 먼저 ‘도’에 도착해서 순간적으로 ‘솔시도파’의 불협화음이 연출된다. 이 선각자가 일으킨 소동은 나머지 음들이 뒤따라 오면서 해소된다. 이 비화성음은 악곡의 마지막에 나타나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했다. 아예 자잘한 화성 진행은 아랑곳하지 않는 비화성음의 존재도 있다. 주로 저음에 많이 나타나서 저속음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음 하나를 아주 길게 고집하는 것이다. 마치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봤자 결국 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거야” 하는 듯이. 그리고 실제로 화성의 마무리는 이 저속음에 따라 이루어진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삼화음 화성 체계가 확립되자 불협화음의 종류와 절차도 명확해졌다. 협화음인 3화음들과 불협화음인 7화음들에게 각각 기능과 역할이 주어졌다. 이제 7화음은 해결을 요하는 화음, 즉 음악의 동력장치로서 음악의 드라마를 만드는 중요한 화성적 재료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드라마메이커’를 다루는 기술이 화성법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협화음은 시대와 관계없이 동일하지만 불협화음은 시대와 작곡가에 따라 변모를 거듭했으므로.

바그너는 불협화음으로 야기되는 긴장감을 최대한 이용한 작곡가였다. 그는 불협화음을 해결하지 않은 채 다시 다른 불협화음으로 옮겨가곤 했다. 당연히 긴장감이 더 높아진다. 그리고 해결하는 척하다가 또다시 다른 불협화음으로…. 이렇게 해결을 미루고 미루어서 긴장을 한껏 쌓아 올린 후에 조금씩 혹은 한꺼번에 풀어가면서 음악의 고조와 이완을 컨트롤했다. 그는 이 방법으로 긴 호흡의 음악극을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조성이 해체되자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던 3화음 화성 체계도 함께 무너졌다. 기존의 협화음, 불협화음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불협화음의 해방”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긴장의 태엽을 조여 그 동력으로 음악을 진행시키는 원리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 불협화음 중에도 진한 것과 연한 것이 있고 소음 중에도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있어 긴장과 이완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소음이 연속되는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의 희생자를 위한 애가’ 같은 곡에도 불협화음적 음향과 협화음적 음향이 있고 당연히 긴장과 이완의 곡선이 있다.

불협화음이 없는 음악은 없다. 다만 어떤 불협화음이든 해결이 제대로 돼야 하고 해결에는 규칙 혹은 법도가 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계류음은 당김음으로 예비된 후 강박에서 나타난다. 계류된 음은 반드시 2도 하행한다.” “저속음은 그 조성의 중요한 음(딸림음이나 으뜸음)이어야 한다.” 등등.

불협화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음악에 필요한 긴장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절차 없이 나타나 무책임하게 사라지는 불협화음은 음악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끊는다. 이런 소리는 긴장을 만들어주기보다는 음악의 격을 떨어뜨린다.

이건용 작곡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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