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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취재일기] 누구를 위한 남북단일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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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박 린 스포츠부 기자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신소정(27)은 현재 미국 미네소타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다. 내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기량을 갈고 닦기 위해 자비를 들여 훈련 중이다. 그런데 신소정은 최근 고국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실망을 넘어 좌절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여자아이스하키 대학팀이나 실업팀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우리 선수들은 평창 올림픽만 바라보면서 뛰고 있어요. 그런데 ‘남북 단일팀’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요.”

신소정은 “지난 20일 정부가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대표팀 선수들이 동요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북한 선수가 대표팀에 들어오게 되면 그만큼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부는 남북 단일팀 구성을 추진하면서 대한아이스하키협회와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물론 북한과도 논의한 적이 없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은 자신의 인생이 달린 중대한 문제를 정부의 ‘깜짝 발표’를 통해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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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여자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이 골을 넣자 북한 선수들이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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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4일 전북 무주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나 불과 2시간 후 북한의 장웅(70)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스포츠 위에 정치가 있다. 평창 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고 싶어도 지금까지 평창 올림픽 출전권을 딴 북한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문 대통령이 단일팀 구성을 제안하기까지 충분한 검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중앙일보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평창 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동시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설문조사를 한 결과 ‘국제 여론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96%나 됐다. 더구나 북한은 최근 억류됐다 풀려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숨진 뒤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상태다.

정치인들이 의욕만 앞서 제각각 남북 교류를 추진하는 것도 문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5일 느닷없이 장웅 IOC 위원에게 분단 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경평축구 대회’를 재개하자고 요청했다. ‘획기적인 스포츠 교류 아이디어가 있다’며 무조건 만나고 싶다는 정치인들의 요청이 쇄도하자 장웅 IOC 위원이 불쾌감을 표시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스포츠를 통해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자는 대의는 좋다. 그러나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가슴은 뜨거워도 좋지만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박 린 스포츠부 기자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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