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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54] 중등교육은 붕어빵 제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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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조선일보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은 당대 산업혁명의 희생양이던 노동자들을 아사(餓死)에서 구하라고 동시대인들을 불같이 다그쳤고, 전 재산을 들여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생산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열등한 장인(匠人)이 싼 품삯으로 우수한 장인의 일을 가로채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고, 같은 일에 대한 보수는 같되 우수한 장인은 일감을 얻고 열등한 장인은 일감을 못 얻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말이지만 '기술 없는 기술자'의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공감이 가는 말이다.

현 정부는 우월성을 반(反)국가적 범죄로 보는 것 같다. 사기업에도 성과급 폐지를 촉구하고, 수능시험을 유명무실화(?)하고, 외고와 자사고를 직권으로 폐지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자유, 국민의 재산권, 국민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는 실종된다. 어쩌면 정부는 차세대 국민의 행복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차세대를 무력감과 실의에 빠뜨리는 전횡이다.

조선일보

경쟁이 현대인을 병들게 하는 것은 재론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이 없는 사회, 즉 자신의 능력을 치열하게 연마해 완성하도록 촉구하지 않는 사회가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은 아니다. 철들기 전의 청소년들은 경쟁이 덜해져서 게임이나 오락을 할 시간이 늘면 아마도 희희낙락할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 후 자신은 하나도 우수한 능력이나 기술이 없는, 따라서 아무 데서도 정말 요긴하게 쓰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얼마나 허전하고 불안하겠는가. 바야흐로 100세 시대라는데 자기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지속적 자기 향상의 기반 없이 50년, 70년을 드라마나 보는 재미로 살아야 하는가? 그런데 우월성을 죄악시하도록 배운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면 드라마도 재미가 없고, 운동경기, 음악회, 전시회 모두 볼만한 것이 없고, 모든 건축물이나 시설, 조직 운영 체계가 전부 부실해서 위태롭고, 병이나 사고가 나도 믿고 찾을 의사도 없게 되지 않겠는가.

김연아같이 천재적 재능에 의지력까지 뛰어난 유소년은 한 세대에 몇 명 나지 않는다. 적절한 격려와 고강도 단련으로 평범한 유소년을 쓸 만한 인재, 대성할 유망주로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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