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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현기의 시시각각] 강경화는 올브라이트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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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여성장관’으로 남으려면

‘대통령 아바타’에 멈춰서는 곤란

중앙일보

겁 없는 소녀상.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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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월가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 명물은 황소상이다. 보름 전 이곳에서 새로운 명물을 봤다. ‘겁 없는 소녀상’.

중앙일보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허리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쳐든 채 황소와 눈싸움하듯 마주 서 있었다. 지난 3월 투자회사 SSGS가 설치했다고 한다. 그 경위가 흥미롭다. 자신들이 투자하는 3500개 글로벌기업을 살펴보니 50%는 여성임원 비율이 15%도 안 됐고, 25%는 아예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한 달간 한시적으로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월가에 소녀상을 설치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장 설치가 1년 연장됐다. 지금 인기로 보면 영구적으로 남을 것 같다. 양성평등의 상징으로 말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7월 냉전 이후 역대 미 국무장관의 랭킹을 매겼다. 그 결과 1~3위가 여성. 미국의 역대 여성 국무장관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콘돌리자 라이스, 힐러리 클린턴 딱 세 명이니 성공확률 100%다.

특히 1997년 첫 여성 국무장관에 깜짝 발탁된 올브라이트는 선구자적 존재다. 그는 브로치를 통해 민감한 외교 메시지를 전달했다. 러시아와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 협상을 벌일 때는 화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았다. 러시아 외교장관이 “그게 당신네 요격미사일 중 하나냐”고 조롱하자 “맞다. 우리는 이렇게 작게 만든다”고 응수했다. 중동회담 때는 자전거 브로치를 달았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처럼 “우리는 포기하지 말자”는 메시지였다. 북한을 방문할 때는 독수리 브로치로 미국의 힘을 과시했다. ‘외교의 향기’가 있었다. 이는 2005년부터 8년을 ‘여성 외교수장 시대’로 만든 밑거름이 됐다. 다음 국무장관 존 케리가 첫 출근길에 한 말이 “남성이 국무부를 잘 이끌 수 있을지…”였다고 한다.

청문회 과정에서의 각종 의혹과 질타 속에 70년 외교부 사상 첫 여성장관이 된 강경화. 여러 점에서 올브라이트와 닮았다. 외국생활을 오래 해 세련됨이 몸에 배었고, 유엔 근무(강경화 10년, 올브라이트 4년)를 하며 인권·난민 문제를 다뤘고, 60대 초반 나이에 외교수장에 올랐고, 저널리스트 출신(KBS 아나운서, 미주리주 로라데일리뉴스)이다. 4강 외교 운운 이런 것 없고 유엔 경력이 거의 유일하다.

올브라이트는 “과연 여성이 외교수장을 해낼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전임자(워런 크리스토퍼)가 4년 동안 했던 것을 단 4주 만에 이뤄낸 위대한 국무장관”이란 극찬으로 뒤바꿔 놓았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대, 이라크 제재, 북한 핵 동결 등 굵직한 현안마다 뚝심있게 미국의 입장을 관철해 냈다. 또 결코 ‘예스우먼’에 머물지 않았다. 보스니아 내전 때는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인권참상을 감성적으로 호소, 전쟁 종식의 주인공이 됐다.

올브라이트가 그랬듯 결국 강경화도 결과로 보여 주는 수밖에 없다. 승부처는 코앞에 닥친 한·미 정상회담(29~30일)과 G20(7월 7~8일). 여기서 얼마나 문재인 외교를 원만히 안착시키느냐에 강경화의 진가가 판가름 날 것이다.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또한 ‘인권’이란 본인의 ‘주특기’로만 밀어붙일 것인지, 얼마나 현실적 외교감각을 가미해 요리해낼지 관전 포인트다.

월가에서 바라본 소녀상은 한국의 강경화와 오버랩된다. 황소(남성 지배 관료조직)에 맞서는 소녀(여성 외교장관). 게다가 소녀상은 설치 한 달 후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여성들을 중심으로 3만 명이 “이 동상을 존치시켜라”는 시민청원운동을 일으켜 살아남았다. 강경화도 지명 후 ‘후보 철회’ 위기에 놓였지만 여성단체와 위안부 할머니, 전직 외교장관들이 들고일어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여성지도력의 힘을 알아라. 그녀는 차이(difference)를 만들 것이다.” 월가 소녀상 밑에 새겨진 문구다. 강경화는 과연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인가. 대통령의 아바타에 멈출 것인가, ‘한국의 올브라이트’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황소보다 더 무서운 국민들 눈이 지켜보고 있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기자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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