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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분수대] 학종마저 이러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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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나현철 논설위원


고3인 둘째 딸아이의 체력이 약하다고 담임 선생님이 걱정을 해주셨다. “등교시간이 8시까지인데 7시50분까지 안 오는 거예요. 전화를 해도 안 받고. 생활기록부에 무단지각 한 번만 있어도 치명적이거든요.”

무슨 얘기인지 안다. 일반고에 다니는 딸은 대입 수시를 준비하고 있다. 정시를 준비하기엔 부담이 너무 크다. 학교 수업과 별개로 학원을 다녀야 하고, 그러면 한 달 100만원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아이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적지 않은 돈이다. 그래서 딸은 일찌감치 수시로 대학을 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시 중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다. 이러려면 성적 관리도 해야 하고 지망하는 학과에 맞는 활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본선(?)에 가면 비슷한 성적에 비슷한 스펙을 쌓은 아이들이 경쟁한다. 그러니 혹시라도 학생부에 감점 요인이 없어야 한다는 게 선생님 얘기다.

학생부는 대입의 기본이다. 내년 대입에서 수시모집으로 선발하는 인원이 73.7%다. 넷 중 셋은 수시다. 그중에서도 63.7%가 학생부종합이나 학생부교과전형이다. 정시는 재수생들이 판을 친다. 그러니 부모도 학생도 학생부 한 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고3을 키우는 부모들은 항상 조마조마하다. 더 좋은 스펙은 마련해주지 못해도 불이익은 당하지 않게 해주자는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마다 억지로 아이를 깨우고, 친구들과 원만히 지내며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라는 뻔한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이 그토록 공분을 산 것도 이런 일상의 노력을 돈과 권력으로 너무도 쉽게 바꿨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전 서울대 법대 학장의 아들 문제가 터졌다. 여학생과 한 방에 있다가 걸려 학교 선도위에서 퇴학 처분이 내려졌는데 이후 2주 특별교육으로 감경됐다는 것이다. 중대한 사안인데 학생부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종으로 대입을 치러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했다. 이 학교는 유난히 학종으로 서울대에 많이 입학을 시키는 자사고다. 비결은 몰라도 이 학교에선 무단지각 한 번에 벌벌 떠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입시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학종의 공정성은 학생부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믿음이 깨졌다. 체육특기자에 이어 학종까지 이러면 어쩌나 싶다. 대입 수시 모집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학종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불신을 불식시킬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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