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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세계 현대미술 NOW](1)사회적 발언보다 예술의 기쁨에 무게…주제도 ‘예술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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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다

경향신문

호주관 트레이시 모파드의 작품 전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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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국제적 주요 행사인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5월13일~11월26일)와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6월10일~9월17일·5년 주기), 뮌스터 조각전(6월10일~10월1일·10년 주기)이 동시에 열리고 있다. 미술비평가인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의 전시 관람기를 4차례에 걸쳐 싣는다. 베니스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카셀 도쿠멘타, 뮌스터 조각전에 이어 세계 현대미술 흐름 속에서 한국현대미술의 현주소 등도 살펴본다.


따갑고 고온다습한 날씨에도 불구, 올해도 베니스에서는 어김없이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국가관들이 있는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를 비롯해 시내 곳곳에 마련된 수십개의 연계 전시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세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좀 과장하면, 베니스 섬이 가라앉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경향신문

57회를 맞는 베니스 비엔날레는 참여국들이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 한 주제 아래의 본전시로 나뉜다. 본전시는 프랑스의 크리스틴 마셀이 예술감독을 맡아 세계 120명의 작가와 함께 주제인 “예술 만만세”(VIVA ARTE VIVA)를 외치고 있다. 전시 때마다 스타 작가들의 경연장으로 상업적이라는 비판 때문인지 올해에는 참여작가 중 103명이 처음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9개의 소주제로 구성된 본전시는 비교적 미술자본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평가와 함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다룰 수 있는 모든 주제, 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들을 동원해 진정으로 예술지상주의를 구현하려 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마셀 감독은 예술은 주위를 지배하지도 지배받지도 않는 신휴머니즘으로, 예술행위는 저항과 동시에 해방과 관대함을 실천하는 행위의 결과물로 봤다. 최근 정치적·사회적 발언이 쏟아진 많은 비엔날레와 달리 서사를 넘어 활력과 즐거움, 기쁨과 환희를 보여주고자 했다. 따라서 ‘예술 만만세’라는 주제와 함께 맑고 밝은 작품들이 어느 해보다 많아 전체적으로 ‘팬시’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국가관은 베니스 비엔날레만의 특징이다. 총 85개국이 참가해 고유의 현대미술, 즉 자국 예술의 정체성과 기량을 보여주되 배타적이지 않은 관용과 포용력을 발휘해야 하는 까다로운 무대다. 올해 한국은 이대형 예술감독이 작가 코디 최·이완의 작품을 선보였다.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지만 외양의 화려함 등과 달리 내부는 무겁고 산만하며, 감독과 선수가 ‘따로 노는’ 축구경기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인기 있는 독일관의 임호프는 ‘파우스트’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매일 낮 12시, 유리 구조물 전시장에서 작가가 아이폰으로 지시하면 검은 옷을 입은 배우들이 퍼포먼스를 펼친다. 이 시대의 잔혹성과 불안, 그리고 위기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문제만 제기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녹음실을 만들어 놓은 자비에 베이앙의 프랑스관, 건축현장의 잔해로 전시장을 가득 메운 영국관은 현지 매체들의 각광을 받았지만, 오히려 호주관의 트레이시 모페드의 영상과 사진은 서사를 서정으로 풀어내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리자 레아하나(뉴질랜드관)의 대형 영상작품(4×25m)은 뉴질랜드에 도착한 영국인과 폴리네시안의 만남을 ‘침략이냐, 융합이냐’ 물으며 그 중간에 관객을 세워둔다. 그리스관 조지 드라비스의 ‘딜레마 속 실험실’도 그리스 현재의 정치·경제적 상황 같지만 관객을 존재의 딜레마에 빠뜨린다. 다른 나라 백성을 살리기 위해 우리 백성을 전쟁으로 내몰아야 할지, 아니면 국민들의 죽음을 외면해야 할지, 관객들은 잠시 펠라고스왕이 돼야 한다.

베니스 전역에선 다양한 특별전과 더불어 작가와 관객의 만남, 오페라 등 문화예술 행사가 이어진다. 영국의 V&A미술관과 공동으로 호세 파르도가 꾸민 공예전은 공예의 가치와 삶과 공예의 경계를 넘으려는 의지를 보여주지만 너무 개념적이고 산만해 공예라는 현대미술에 가깝다.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때(2015년)에 호평을 받은 프라다재단은 이번에도 ‘배는 물이 새어 들어오고, 선장은 거짓말을 하고’(5월13일~11월26일)라는 전시를 마련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시대 거장 4인이 만든 전시에서는 줄리어스 시저의 “폭풍우가 몰아치고 우리는 지금 위험에 처해 있다”라는 비장한 외침이 떠올랐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갈등과 희망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복잡한 세계를 전시로 그려내 전시 자체가 공동작업 같았다.

이외에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이란 출신의 샤린 네샤트의 사진과 비디오 작품도 울림이 컸으며, 한국의 원로작가 이승택의 특별전도 한국 미술의 녹록지 않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풍성한 식탁의 베니스는 각종 비엔날레로 날을 지새우며 관광객들을 불러 모은다. 2015년 처음으로 100만명 동원에 이어 이번에도 100만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담론이나 시대정신의 생산보다 또 다른 문화관광상품이 목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진정 ‘베니스의 상인’ 후손답다. 속내가 드러나 보이는 듯하다.

<베니스 | 정준모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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