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숙 "향후 5년 일정 꽉차 작곡요청 90%는 돌려보내"

■ 베를린필, 런던심포니도 줄 세우는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

진은숙(56)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베를린필하모닉, 런던심포니, LA필하모닉 등을 필두로 십 수 개의 정상급 단체들이 그의 곡을 받기 위해 줄을 늘어서 있다. 향후 5년치 작곡 일정은 이미 빼곡하다.

그는 "요청의 90%는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지휘 거장 사이먼 래틀은 올해 베를린필과의 마지막 아시아 투어에서 연주할 곡으로 진은숙의 작품을 골랐다.

작곡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2004)을 비롯해 생존 작곡가에게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쇤베르크상(2005),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2010) 등을 거머쥔 진은숙은 명실상부한 동시대 작곡계의 스타지만 정작 고국에서 그의 음악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다음달 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우리 시대의 작곡가 진은숙'이 의미 있는 이유다. 진은숙의 작품으로만 꾸려진, 일종의 국내 최초 '진은숙 헌정 공연'이다. 피아노 협주곡, 에튀드 1·2·5번을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연주하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가 아시아 초연된다. 독일 베를린에 사는 그가 공연에 맞춰 한국을 찾았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이뤄졌다.

―국내 첫 헌정 공연이다. 감회는?

▷남다른 기분이다. 옛날부터 내 곡을 훌륭히 연주해준 김선욱과 함께라 더욱.

―한국 클래식 시장에서 현대음악은 팬층이 엷다. 아쉬움은 없나.

▷정도 차이일 뿐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베토벤, 바그너 시대에도 동시대 음악은 낯설게 인식됐다. 작품의 가치가 널리 이해되려면 몇 십, 몇 백 년 시간이 필요하다.

―작곡 과정이 궁금하다. 즐거운가.

▷전혀 그렇지 않다. 즐거움은 없다. 텅 빈 오선지를 쳐다보고 있으면 기가 팍 막힌다. 대단히 무미건조한 일이다. 나의 작품에 완벽히 만족하는 경우도 없다.

―베를린필 등 최고 오케스트라들이 연주해줄 때도 만족이 안 되나.

▷물론 100%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런 훌륭한 악단들의 연주를 들으면 작곡가로서 일하는 보람은 느낀다. 베를린필, 보스턴심포니도 그랬고 얼마 전 독일 쾰른 페스티벌에서 서독일방송교향악단과 김선욱의 연주도 무척 좋았다. 김선욱은 대단히 깊이 있는 피아니스트다.

―혹시 손으로 악보를 그리나.

▷나는 구세대라 손으로 안 쓰면 곡을 못 쓴다. 펜을 쥐고 음표 하나를 찍을 때마다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 중요하다. 요즘은 컴퓨터로 휙휙 작곡을 한다지만, 음표 찍는 속도와 생각이 돌아가는 속도가 다른 건 안 좋을 것 같다.

―영감의 원천이 무엇인가.

▷생활하며 느끼는 모든 것. 책도 읽고 남이 쓴 음악도 많이 듣는다. 요즘에는 물리학에 관심이 많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독일 물리학자)의 자서전을 얼마 전에 주문했다. 지난해 선보인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도 이런 흥미에서 나왔다.

―예비 작곡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작곡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현실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작곡 하려면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 여자라면 특히. 남들 다 하는 일상을 누리면서 작곡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중학생 아들을 둔 워킹맘이지 않나.

▷작곡가로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이룬 뒤 결혼을 하고 나이 마흔에 아이를 가졌다. 음악가였던 남편은 이제 '올인'해서 내 일만을 돕는다. 일반적인 결혼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

―언제부터 작곡가를 꿈꿨나.

▷어릴 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형편상 레슨을 못 받아 중학교 때 작곡으로 돌렸다. 독학으로 작곡을 하다 삼수를 해서 서울대 작곡과에 들어갔다.

―취미가 있나.

▷운전과 요리를 즐긴다. 젊을 때는 옷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내가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다. 패션 쪽으로 나갔으면 더 잘 풀렸을지도 모르겠다.(웃음)

―목표가 있다면.

▷죽는 날까지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것.

공연은 7월 1일 롯데콘서트홀. 진은숙 음악에 정통한 이스라엘 출신 일란 볼코프가 지휘봉을 잡는다.

[오신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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