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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1 (금)

90세 은퇴하는 홍콩 최대 부자, 리카싱 회장의 노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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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열전-17] 홍콩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듣는 얘기가 있다. 홍콩 최고 부자인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CK 허치슨그룹) 회장과 30년 동안 그의 자가용을 운전했던 기사 이야기다. 정년을 채운 운전기사가 퇴직할 때 리 회장은 평소 급여를 많이 주지 못한 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 전별금을 건넸다. 노후를 편하게 보낼 만한 거금이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그 돈을 사양했다. 왜 돈을 받지 않냐고 리 회장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회장님께서 차 안에서 통화하시는 말씀을 제가 듣지 않았습니까? 회장님께서 부동산을 매입하라고 할 때마다 저도 그 인근에 있는 땅을 조금씩 사 두었습니다. 그 땅값이 올라 지금은 수십억 원에 달합니다. 그 돈만으로도 여생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소개돼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매일경제

리카싱 청쿵그룹(CK 허치슨그룹) 회장/사진=청쿵그룹(CK 허치슨그룹) 홈페이지


이처럼 운전기사에게도 뛰어난 사업 영감을 불어넣은 리 회장이 내년에 90세를 맞아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리 회장은 큰 아들 빅터 리에 자리를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이미 50세를 훌쩍 넘은 빅터 리는 부친 밑에서 30년 넘게 경영수업을 받아왔던 터라 청쿵그룹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28년생인 리 회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왕성하게 활동했다. 지난달에는 알파고를 창조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를 만나 인공지능(AI)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리 회장은 오래 전부터 딥마인드에 투자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초면은 아니었다. 리 회장은 AI뿐만 아니라 빅데이터와 3D 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에서 투자 기회를 모색했다. "지금은 지식이 중요한 때다. 새로운 정보가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실패한다. 반면 돈이 없어도 정보만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식경제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리 회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를 재벌로 만들어 준 부동산 투자에 대한 감각도 잃지 않았다. 홍콩 부동산에 대한 애착은 여전하다. 올해 초 홍콩 부동산 투자를 지시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대륙은 땅이 많지만 홍콩은 그렇지 못하다. 중국 본토 사람의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홍콩 부동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집과 땅뿐만 아니라 사회기반시설도 눈여겨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은 그에게 큰 호재다. 리 회장은 이미 일대일로 해상 구간에 20개가 넘는 거점을 확보해 놓았다.

홍콩에서 큰 사업가로 성공했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광둥성이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청빈한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난징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는데 난징이 위험해지자 그의 가족은 홍콩으로 떠나야 했다. 피란지 삶은 고달팠다. 설상가상으로 중학교에 다닐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그는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세탁소 점원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돈을 모은 그는 20대 초반에 작은 플라스틱 공장을 세웠다.

제조업으로 시작했지만 그의 눈은 부동산에 가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홍콩 땅값은 비싸지 않았고,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리 회장은 달랐다. 언젠가는 홍콩이 개발될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공장을 운영하며 축적된 자금으로 그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그의 예견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땅값은 폭등했다. 재산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불어나는 속도가 빨라졌다.

홍콩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본 리 회장은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펼치자 본토로 진출했다. 주변에서는 공산당 치하에서는 땅 투자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그는 위험을 감수했다. 부동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며 그는 홍콩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자 반열에 올랐다. 블룸버그와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약 330억달러로 홍콩에서는 독보적 1위이고,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에 이어 2~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70년 넘게 사업했던 노장답게 기업 경영과 관련한 그의 발언은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욕심이 많고 인간미가 없는 사람, 원칙과 사명감이 없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며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같이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각박하게 굴지 말 것이며 동정심 없고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과는 가까이 하지 말라." 그는 사재를 털어 기부하는 기업가로도 유명하다. 액수도 천문학적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낡은 양복과 구두를 신고 다닐 만큼 검소하다. 남에게는 너그럽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삶의 태도는 리 회장이 90세가 될 때까지 건강하게 기업을 경영하는 저력이 됐을 것이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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