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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1부에선 솔리스트, 2부에선 '깜짝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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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시향 정기 공연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 협연 후 오케스트라로 자리 옮겨 단원들과 함께 교향곡 연주

"어머! 저기 좀 봐."

지난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 공연인 '브루크너와 슈만'에서 2부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서울시향 단원들 사이로 뜻밖의 인물이 따라나와 첼로 파트 맨 뒷줄에 앉았다. 불과 20분 전까지 1부 공연에서 시향과 함께 슈만의 첼로 협주곡을 호연한 독일 첼리스트 알반 게르하르트(48)였다.

객석에서 이내 기분 좋은 지각변동이 일었다. 그를 알아본 일부 관객이 낮게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보낸 것. 베를린 필하모닉·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등 세계 250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에코 클래식 어워드도 세 번 거머쥔 게르하르트는 이날 시향의 '열한 번째 첼로 단원'이 되어 브루크너 교향곡 7번 연주에 가세했다.

조선일보

22일 예술의전당에서 첼로 파트 맨 뒷줄에 앉아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알반 게르하르트. /서울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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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협주곡을 협연한 솔리스트가 오케스트라의 일부로 포지션을 바꿔 교향악을 연주하는 경우는 해외에서도 드물다. 시향 측은 "전날인 22일 공연에서도 게르하르트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2부 연주를 즐겼다. 그날 오후 본인이 먼저 참여 의사를 밝혀 급히 악보를 복사해줬다"고 했다. 게르하르트는 별도의 리허설 없이 바로 무대에 올라갔다.

연주가 시작됐다. 바이올린 군단이 진동하는 가운데 첼로의 신비로운 선율이 허공을 가르며 치솟았다. 허리를 세우고 앉아 지휘자와 악보를 번갈아 보며 집중하는 모습이 음악원을 갓 졸업한 새내기처럼 조심스럽고 풋풋했다. 지판을 누르는 왼손가락의 움직임과 활을 오르내리는 방향도 나머지 단원들과 딱딱 맞았다.

여덟 살에 피아노와 첼로를 시작한 게르하르트는 베를린 필에서 제2바이올린 단원으로 반세기 가까이 활동한 아버지 악셀을 보며 늘 오케스트라에 몸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면 협주곡을 마친 뒤 단원들 사이에 끼어 교향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오케스트라에 따라 반기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다.

아무리 뛰어난 거장(巨匠)일지라도 '깜짝 단원'으로 참여할 때에는 오케스트라 맨 끝줄에 앉는 게 불문율이다. 이번 무대는 수석 객원 지휘자인 마르쿠스 슈텐츠와의 친분이 큰 몫을 했다. 10년 전 슈텐츠가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에 수석 지휘자로 섰을 때 역시 협연자였던 당시의 게르하르트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에 동참했다. 곡목 또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이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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