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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차길진과 세상만사] 116. 영원한 미제사건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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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

최근 미국에서 41년 전 일어났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처럼 과학적 수사와 끈질긴 범인 체포의 집념은 미제사건을 하나 둘 줄여나간다. 범인을 알 수 없어 범죄가 장기미제사건, 일명 콜드케이스가 돼도 경찰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좀 더 과학이 발전해 재수사가 가능해질 때까지 미루어둘 뿐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피해자 가족들은 그 시간만큼 고통도 길어진다는 점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알려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피해자의 가족들로 처음에는 구명시식으로 범인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가, 내 설득으로 피해자 영가를 천도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것은 범인이 이미 영계에서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미제사건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계에는 미제사건은 없습니다”라는 내 말에 피해자 가족은 영혼의 천도가 우선임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에서는 살인, 강도 등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진다. 사건은 나날이 치밀해지고 수사는 미궁에 빠지기 일쑤다. 초기에 잡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범인을 잡을 확률은 점점 낮아지는 것이다.

왜 화성 사건은 미제로 끝날 수밖에 없었을까. 나는 피해자 가족을 만나는 순간 그 해답을 알았다. 그래서 범인을 알아내려는 구명시식은 하지 말라고 말린 것이다. 왜냐하면 형사상으로 범인이 잡히지 않았지만 이미 영계에선 범인이 잡혔고 처벌까지 끝난 상태였던 것. 즉 수천 명의 경찰 인력이 동원돼도 범인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인간의 처벌에 앞서 영계의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에 미제사건은 있어도 영계에는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충북에서 발생했던 한의사 살인사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의 피해자 가족이 피해자 영가들을 천도시키고 싶다며 나를 찾았다. 충북의 어느 한의원에서 한의사와 조수가 모두 살해당했는데 미제사건으로 남아 피해자 가족들은 그때까지도 한이 맺혀 있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그들의 슬픔이 오죽하랴. 나는 구명시식에서 그때로 돌아갔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나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미제사건으로 끝난 이 사건은 결코 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범인은 이미 영가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범인은 바로 한의사의 조카였고 그는 가장 고통스러운 암으로 사망한지 오래였다. 조카 영가는 ‘차라리 잡혀서 사형으로 죽었다면 더 편했을 겁니다’라며 눈물로 후회했다. 죄를 진만큼 큰 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이 사건은 미제로 남고 말았다. 현재 미제로 남은 수많은 사건들을 영계에서 재조사한다면 범인은 이미 사망했거나 죽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절대 사람을 해치고는 편하게 살 수가 없다. 자신은 완전범죄를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영계의 눈만큼은 절대 속일 수가 없다.

미제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대도 신창원이 신출귀몰하게 도망다녀 경찰을 난처하게 하고 있을 때였다. 정년퇴직을 앞둔 한 경찰간부가 퇴직 후에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찾아왔고 그 마음을 생각해 구명시식을 올려줬다. 그런데 그 다음날 한가하기만 한 그의 부서로 신창원을 봤다는 신고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신창원을 체포한 공으로 그는 편안한 정년퇴직은 커녕 진급을 거듭해 경찰 고위직까지 올랐다. 미스터리처럼 남는 미제사건. 현세에서는 무의식적인 동기로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실 영계에는 무의식적이란 것은 없다. 절대적인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이유는 보이는 세계에서는 알 수가 없다. 신창원의 체포 역시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인과’의 법칙이요, ‘필연’의 수레다.

영원히 미제사건이 되는 이유가 있다면 단 한가지다. 영계의 처벌이 끝난 경우, 더 이상 인간의 처벌이 불가능해질 때 미제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계는 미제사건의 범인들을 현세를 대신해서 처벌하고 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말이다.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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