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4 (토)

[기자 24시] 뒤늦게 `禁女의 벽` 허무는 서울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하버드대 57%, 서울대 10%.'

서울대와 하버드대 대학본부 보직 교수의 여성 비율이다. 하버드대는 학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헤드쿼터'에서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더 높다.

서울대는 이제 겨우 10명 중 1명꼴이다. 교수들 사이에선 "비서울대 출신을 배척하는 문화 못지않게 '여성에 대한 차별'도 서울대를 구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외국 명문대학에 비해서만 성평등 수준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서울대 전체 교원 1794명 가운데 여성 교원은 315명으로 14.9%밖에 안 된다. 해외 대학은 물론 전국 대학 평균(22.1%)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서울대 교수는 "여교수들이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는) 주요 보직을 맡아달라는 제안 자체가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워낙 숫자가 적다 보니 스스로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여성으로는 드물게 본부 보직을 맡았던 A교수는 "워낙 여자가 소수인 데다가 뭘 맡긴 후에도 '저 사람 저거 해내겠어?'라는 불안한 시선이 항상 짐으로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획일성은 대학의 경쟁력을 갉아먹는다. 다양성을 상실한 조직에서 창의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와 사례로 증명된 사실이다. '젠더혁신'의 개념을 고안한 론다 슈빙어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올해 초 기자와 만나 서울대 공대에 교수 340명 중 여성이 10명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젠더는 물론 인종, 배경을 뛰어넘는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지금의 위상과 별개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고 묵직한 경고를 전했다.

최근 서울대 공대가 만장일치로 공대 인사위원회에 여교수 참여를 의무화하는 안을 통과시키고 평의원회가 '학내 성평등 참회록'까지 쓰면서 뒤늦게 '금녀(禁女)' 울타리 허물기에 나섰다. 새 정부의 남녀동수내각 정책에 코드 맞추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방향은 옳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경쟁력은 다양한 생각을 모아 AI가 할 수 없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막아서면 국내 최고 대학이라는 서울대도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게 될 뿐이다.

[사회부 = 황순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