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2 (목)

"진보 보수 떠나, 사람 사는 세상...담담하게 담아낸게 통했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창재 감독이 영화 포스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충우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개봉 한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의 인기는 여전하다. 국내외 상업영화들의 틈에서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며 이제 200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손익분기점 20만명(제작비 6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다큐가 이 정도로 흥행하는 건 드문 일이다. 이유가 뭘까. 왜 사람들은 꾸준히 이 영화를 찾을까. 왜 아직도 많은 이들이 8년 전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잊지 못할까. 아니, 잊지 않으려는 걸까. 이창재 감독을 만난 건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함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앙대 교수 연구동. 이 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 감독 연구실을 찾았다. 그는 아직 못다한 말이 많아 보였다.

―다큐로는 드물게 176만명이 봤다.

▶감사할 따름이다. 국민들이 그간 억눌린 감정이 있었던 것 같다. 드러내놓고 슬퍼하고 그리워할 수가 없는 무언가가. 그러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사회적 공기가 바뀌고, 해방 공간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 가운데 이 영화가 도착한 것 같다.

―개봉 한 달째인데, 요즘 근황은.

▶극장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있다. 요즘은 10·20대가 많이 온다. 대개 노무현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눈물 났다고, 감동받았다고 한다. 큰 보람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헬조선'이라 언명되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어른 상을 갈구해온 게 아닌가 싶다. 저런 분이 있었나 하고 새삼 느끼는 거지. 경쟁 우선주의의 복판에서 인간중심주의, 인간제일주의, 사람사는 세상을 외친 분이 있었구나 하고.

―젊은이들 얘기해서 드는 생각인데, 노무현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던, 이를테면 일간베스트(이하 일베) 같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이 고인에 대한 왜곡된 상을 어느정도 교정할 수도 있겠더라.

▶일베라는 것도 사회가 억눌렸을 때 발생하는 비행의 성격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최근 메일을 하나 받았다. 일베하는 중학생인데요. '노무현입니다' 보러 가는데 (일베에서 읽었던) 이게 맞는 말이에요? 묻더라. 청소년에게 이 영화가 훌륭한 인간상의 한 모델로서 교육적 가치도 있겠다 싶었다. 한계도 분명했지만 그분이 지향했던 세상은 그래도 올바르지 않았나.

―4년 전 출발했는데, 개봉까지 오래 걸렸다.

▶노무현과의 인연은 광화문 노제에 간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어떤 서글픔이 오래 지속됐다. 책도 뒤져보고 유투브로 관련 영상도 찾아봤다. 어느 날 유투브 계정에 들어가니 좋아할 만한 영상에 고인의 영상만 수북하더라. 아, 이럴 거면 차라리 만들자. 혼자 속앓이 하듯 힐끔거리지 말자. 차라리 영화로 만들자 했던 거다.

―당시 분위기상 쉽지 않은 과정이었겠다.

▶이미 3편은 찍어본 터라 나름 중견축에 들어간다 여겼다. 투자자, 배급사도 꽤나 알아서 두루 만났지만, 분위기 파악을 잘 못했다. '변호인'(2013) 나온 지 얼마 안 을 땐데, 다들 만류했다. 멀티플렉스는 불가능하고, 회사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기관투자자들은 전문위원제도가 있다. 정부가 파견하는 분들이 검토에 들어가는데, 이걸 하겠다고 하면 투자펀드도 문닫아야 할 지 모른다더라. 그러다 작년 총선때 여소야대로 바뀌며 다시 하게 됐다. 그래도 정상적인 통로로는 어려웠다. 여전히 다들 안 된다 했지만 고맙게도 여러 의인들이 있었다. 마치 독립운동하듯 당위성을 공유하며 도와주신 분들이다. 완성하는 데에는 8개월 걸렸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더듬어나가는 과정에서 완성됐다.

―영화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만 초점을 맞춘다.

▶당시 경선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시민선거혁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노무현은 말을 타고 광야에 홀로 나온 셈이다. 그 뒤에 시민군들이 달려나온 거다. 시민과 시민의 대표자만 있었던 거지. 물론 작은 변수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상징하는 바가 내겐 너무 컸다. 그래서 이걸 보여주면 헬조선에서 고통받는 시민들이 은연 중 망각했을 지 모를 잠재된 힘을 자각할 것 같았다. 우리는 시민이고 우리가 정치를 만든다는.

―마지막 장면부터 가자. 때는 2000년 새천년민주당 부산 북강서울 후보 출마 당시 자료다. 노무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리를 누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노무현입니다"라고 인사한다. 어쩌면 이 영화가 이 장면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비슷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노무현 재단의 다큐 감독 한 분이 2000년 경선 전체를 촬영했는데 방송을 못 내고 기증을 했다. 그 자료의 상당량이 다큐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쓰였다. 그래서 쓸 게 없었다. 그래도 쭉 보았는데 그 장면이 남아 있었다. 마치 나를 위해 남겨놓은 것처럼. 그래서 마지막 장면으로 상정해놓고 편집에 들어갔다.

―영화 말미 대통령에 당선돼 카퍼레이드하는 장면과 비슷한 구도의 장례식 차량 장면이 충돌한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과 슬픔과 절망의 순간이 말이다. 정서적 여진이 크다.

▶사실 나에게 그분의 당선 직후와 돌아가신 직후 기억만 또렷하다. 상당수가 그렇지 않았을까. 이분이 행한 많은 노력이 있지만 잘 기억 못하는 거지. 전략팀에서 당선 이후 이야기도 담는 게 옳지 않겠느냐 했다. 그 많은 이야기를 빼버리는 게 맞냐는 거였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해야 한다고 봤다. 이런 충돌로 커다란 호기심과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 저분이 뭘 했었지. 저 분이 어떤 사람이었지 하고.

―인터뷰이들을 면 대 면으로 앵글을 잡아서인지 실제로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다.

▶노무현을 인터뷰 못하니까 이분들이 노무현이어야 한다, 이분들을 통해 노무현이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분들에게 묻어 있는 노무현의 모습이 합쳐져 전체적인 노무현의 모습을 형성했으면 싶었다. 실제로 노무현은 맨 투 맨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입니다'를 대니 보일 감독의 '스티브 잡스'(2016)를 염두에 두고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컨셉을 구상했다고 밝혔던데.

▶진담이었다. 진짜로 그렇게 하려 했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실제로 정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어떠한 광기가 있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보라. 누가 1%도 안 되는 사람을 뽑으려 했겠나. 잡스의 책을 보면 '왜곡 장'이라는 게 나온다. 열정과 의지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면 왜곡돼버린다는 거다. 노 대통령은 당신의 비전에 확신을 가졌고, 거기에 동의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다 국민 대다수를 현실의 왜곡 장에 전염시킨 거다. 그래서 그런 기적의 결과가 나온 거지. 순전히 이성적인 접근 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매드맥스'와 관련해서는 노무현이 갖고 있는 어떤 광기를 표현하기 위해 그 영화 속 메탈음악 사운드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넣어보니 비트가 틀려 영화랑 안 붙더라. 대안으로 노무현의 연설이 화면 앞에서 들려올 때 그걸 듣는 사람들의 열광하는 반응, 박수소리나 함성 같은 걸 서라운드로 구현했다. 영화 보는 이들이 사방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마치 연설 현장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영화는 '노무현은' '노무현을' '노무현과' 처럼, 중간마다 챕터 제목을 나눈다.

▶처음에는 노무현의 어록집들을 쭉 봤다. 그런데 그걸로는 안 되겠더라. 당신의 사상이나 삶이 풍요로우니 하나로 규정이 안 되던 거다. 그래서 일부로 관객들이나 국민들이 직접 붙여볼 수 있게 했다. 이를 테면 '노무현과'라면 우린 노무현과 무엇을 함께했지? 라고 자문할 수 있을 거다. '노무현은'이라면 우리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지? 생각해볼 수 있을 테고. '노무현을'이라면, 노무현을 사랑한다고도, 추모한다고도, 그리워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 보는 사람마다 자유롭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한 거다.

―문재인 대통령의 회고를 영화 말미 배치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라는 고인의 유서를 읽으며 몇 마디 하시는데 짧은 순간이지만 진심이 전해진다.

▶작년 12월 초순이었나. 매우 바쁘실 텐데 내색을 전혀 안 하시더라. 조촐하게 기사분과 여성 참모분 한 명만 데리고 오셨다. 미리 보내드린 질문지 보셨냐니 못 봤다더라. 시간 없었다고. 건조하게 어디 앉으면 됩니까 하며 바로 앉으셨다. 해당 장면에서 읽은 유서는 본인 지갑에 넣고 다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도 저장하고 계신단다. 인터뷰 하시고 그걸 읽은 뒤에 말없이 주차장 지하 2층으로 가셨다. 그러다 다시 나오시더니, 제가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은데 안 물어봐서 말을 못했다고, 혹시 가능하면 돌아가서 할 수 있겠냐고 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영화 속 그 모습이다. 사실 인터뷰 도중 두 번 우셨다. 말씀 안 하시고 중간에 나가서 다시 들어오시고, 그러다 또 우셔서 잠시 나가시고.

―문 대통령의 담지 못한 회고 중 어떤 게 있나.

▶1997년에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려고 했다더라. 농담 아니라 진짜였단다. 안희정 등 당시 참모들이 얼굴이 하얘져서 엄청 말렸다고. 그래도 안 통하니 참모진이 자기한테 연락해 말려달라 부탁했다더라. 동네 망신거리 될 지 모른다며. 그래서 직접 서울에 올라갔고 자초지종을 직접 논리적으로 얘기했다더라. 그러니까 당시 노무현이 "그만하소! 그만하고 내리가소, 듣기 싫소!"하며 화를 버럭 냈다고. 노 전 대통령이 친한 대도 유일하게 존대말 쓰는 사람이 자기 뿐인데, 그런 자기한테 화를 낸 것이 이때가 처음이라고 하셨다.

―이 영화는 고인을 애도하는 한 가지 양식으로 다가온다.

▶내 나름의 애도 방식이었다. 출발이 애도였다면 지금은 작은 변화를 느낀다. 그분의 웃는 표정이든 연설이든 1년여간 속속들이 다 들여다보니 마치 옆에 있던 지인처럼 여겨진다.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더라. 사람 사는 세상이 뭔지를. 사실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구호는 고인이 봉화마을서 한 말이 아니다. 1988년 첫 선거때 나온 말이다. 모나비 볼펜에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과 함께'라는 구호를 적어 2000개를 판촉물로 그 당시 돌렸다. 그때 이미 당신은 '내 지향점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야,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이야'라고 하신 거다. 그 슬로건으로 평생을 실천하고 사신 거지.

[김시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