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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실손보험료 인하 '업계 팔 비틀기' 정책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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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해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보험료를 인하하겠다고 21일 발표한 이후 업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大選) 공약 이행 차원으로 실손보험료 인하를 선언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비합리적인 전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 개혁의 일환으로 2015년 보험료는 시장 자율에 맡기기로 한 지 2년 만에 다시 정부가 가격 통제를 하겠다는 것도 비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실손보험료를 계속 올라가게 만든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는 과잉 진료에 대한 개선책이 없어 실손보험료 인하는 결국 업계 팔 비틀기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의료비 '파이' 그대로라는 전제는 오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실손보험료 인하를 유도하겠다며 내세운 논리는 간단하다. 건강보험 보장을 늘리면 보험사가 실손보험금으로 지급할 돈이 줄어들어 보험사가 반사이익을 보게 되니 보험사는 이를 반영해 보험료를 내리라는 것이다. 의료비는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급여와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로 나뉘는데, 실손보험은 비급여 및 급여 중 자기 부담금(건강보험으로 의료비를 내더라도 개인이 내야 하는 최소한의 돈)을 돌려준다. 단순히 생각하면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급여 비중이 늘어나면 보험사로부터 나가는 돈은 줄어들 듯 보인다.



조선비즈


그러나 이 논리는 '총의료비는 같다'라는 잘못된 전제가 기반이 됐다고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비급여는 가격·명칭 등이 통일돼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을 늘릴 경우 의료계가 새로운 비급여 항목을 계속 만들어낼 공산이 크다"며 "비급여부터 체계화시켜 손질하지 않으면 아무리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해도 의료비가 줄어들거나 실손보험 손해율(낸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이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이 계속 확대됐지만 총의료비 중에 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율(건강보험 보장률)은 올라가지 않고 있다. 복지부는 2014년 선택 진료 환자 부담을 줄이고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을 2013년부터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등 건강보험 보장을 계속 늘려 왔는데,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0년 63.6%에서 2015년 63.4%로 오히려 다소 낮아졌다. 건강보험 보장이 늘어난 만큼 건강보험이 돈을 내주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덩달아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0년 17조9000억원이었던 비급여 의료비는 2013년 23조3000억원으로 30% 불어났다.

◇"과잉 진료 온상 의원급도 진료비 공개해야"

보험업계는 비급여 진료에 대한 통제가 전혀 안 되는 현 상태 그대로 건강보험 보장만 확대될 경우 비급여 진료가 줄어들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보험개발원 분석 결과 실손보험 가입자의 총의료비 중 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은 36.3%로 건강보험 가입자 전체 평균(18.0%)의 2배 수준이었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비급여 진료를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실손보험 인하를 발표하면서 비급여 진료비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긴 했다. 그러나 진료비 공개 대상이 '병원급 이상'(진료과 4개 이상, 병상 30개 이상 등)으로 한정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수치료(손으로 하는 물리치료) 등 실손보험 손해율을 끌어올리는 원인으로 꼽히는 비급여 진료는 이보다 작은 의원급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보험개발원 분석 결과 의원급 비급여 진료 비중은 76%로 대형 병원(종합병원 60%)보다 훨씬 높았다.

보험료를 인하한 새 실손보험이 나올 경우 "기존 보험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김성주 국정기획자문위 전문위원단장 발표문)는 점도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과잉 진료 등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돼 손해율이 내려간다면 보험사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기존의 실손보험료를 인하할 텐데 굳이 새 보험으로 갈아타라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신영 기자(s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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