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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총을 든 소년들이 그린 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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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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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를 둘러싼 여러 화제와 논란 가운데 제일 눈길이 가는 것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의 놀라운 성장세다.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오리지널 영화를 두 편이나 진출시키고 세계 영화계의 판도를 뒤바꿀 큰손으로 급부상한 것은 넷플릭스가 영화 자체제작에 뛰어든 지 불과 삼년 만에 이룬 성과다. 2015년 한 편의 영화 제작으로 시작한 것이 2016년에는 열두 편으로 늘어나더니 올해는 상반기에 공개된 작품만 벌써 지난해 수치를 넘어섰다.

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영화로 기록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출발이었다. 2015년 개봉 당시 <옥자>처럼 대형극장 쪽의 보이콧 끝에 온라인으로만 공개됐지만 높은 완성도에 힘입어 각종 유명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작품이다. 전쟁, 난민, 기아 등 지금 가장 심각한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고발하고 성찰하는 내용부터가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이지리아 출신 미국 소설가 우조딘마 이웨알라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은 아프리카 내전에 휘말린 소년병의 시점을 통해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그려낸다. 주인공 아구(에이브러햄 아타)는 내전 지역 안에서 유일하게 평화협정이 유효한 이른바 ‘완충지대’에 사는 소년이다. 바깥에서는 쿠데타 독재정부와 그에 저항하는 반란군의 치열한 전쟁이 펼쳐지고 연일 난민들이 이주해 오지만 아구를 비롯한 완충지대의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이곳에도 어김없이 군대가 쳐들어오고 아구는 눈앞에서 가족을 잃고 홀로 겨우 마을을 빠져나온다. 숲으로 도망친 아구가 만난 것은 코먼댄트(이드리스 엘바)가 이끄는 반란군 부대였다. 그 부대의 절반은 십대 초중반의 소년병들이었고, 아구도 곧 여기에 합류하게 된다.

‘인류의 가장 비열한 무기’로 불리는 소년병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의 지옥도는 상상 그 이상이다. 군대는 살기 위해 혹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총을 든 소년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착취한다. 불안과 공포를 못 이겨 마약을 복용한 소년들이 환각에 빠져 치르는 전투는 잔혹함의 절정이다. 이 비극을 더 가슴 아프게 만드는 것은 아구의 내레이션이다. 시종일관 침착한 그의 독백은 참상에 무뎌진 목소리가 아니라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도 전에 너무나 압도적인 비극을 마주한 소년의 부서진 마음을 그대로 전달한다.

한겨레

김선영


<트루 디텍티브>에서 환각과 잔인한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냈던 케리 후쿠나가 감독은 <비스츠 오브 노 네이션>에서도 전투의 사실적 재현보다 아구의 내면에 집중하며 소재의 선정성 위험을 피하고 비극적 현실을 효과적으로 환기시킨다. 데뷔작으로 극찬을 받은 에이브러햄 아타의 탁월한 연기는 이 놀라운 작품의 화룡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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