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여적]사우디 왕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족의 천국이다. ‘인구 1700만명에 왕족만 3만명에 이른다’는 비아냥이 인구에 회자된다. 이들은 한 달에 2만~27만달러의 왕족수당까지 받고 있다. 이런 금수저가 없다. 그중 순수왕족은 4000~7000명에 달한다. 사우디 왕족은 18세기 중반 사우디 1차 왕국을 건설한 무함마드 빈 알 사우드(재위 1744~1765)의 후손들이다. 그러나 왕족이라고 다 같은 왕족은 아니다.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한 압둘 아지즈의 후손이어야 ‘왕자 중 왕자’다. 약 17명의 여인과 결혼한 압둘 아지즈는 왕자만 50~60명을 낳았다. 이름에는 예외 없이 ‘사우드 가문의 압둘 아지즈의 아들’이라는 뜻인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가 붙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핵심그룹이 또 있다. 바로 압둘 아지즈의 부인들 중에 핫사 빈트 알 수다이리라는 여인이 낳은 아들 7명이다. 수다이리는 압둘 아지즈 국왕의 8번째이자 가장 사랑한 부인으로 알려져 있다. ‘수다이리 7형제’ 중에서 국왕이 2명이나 배출됐다. 파드(첫째·재위 1985~2005)와 살만(여섯째·2015~) 국왕이다. 왕위는 원래 형제승계가 원칙이었다. 그런데 1992년 ‘압둘 아지즈의 직계 아들과 자손’으로 규정을 바꿈으로써 왕위승계의 범위를 넓혔다. 엊그제 살만 국왕은 기존의 왕위 계승자였던 조카(58)를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31·무함마드)을 왕세자로 교체했다. 물론 수다이리 가계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 대목에서 1100년 전에 고려 태조 왕건이 내린 훈요 10조 중 제3조가 떠오른다. ‘맏아들 승계가 원칙이지만 맏아들이 어리석으면 인망 있는 아들로 바꾸라’는 당부였다. 제 아무리 절대 왕정의 시대였다 해도 왕위계승의 으뜸 덕목은 아들·형제가 아니라 ‘인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우디의 왕위계승조건에도 역시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는 단서는 붙어 있다. 그러나 ‘사우디 왕자’의 느낌은 좋은 편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석유를 뒤집어쓴 졸부의 냄새가 강하다. 여기에 인권탄압과 왕족끼리 다 해먹는다는 지독한 부패까지 겹쳐 있다. 사촌형을 밀어내고 후계자가 된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는 예멘을 공격하고, 카타르를 봉쇄하면서 대이란 강경책을 이끈 31살 왕세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기환 논설위원>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