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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미국 부모들 울리는 '웜비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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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김정은에 대한 악감정 더욱 커져...돌발악재 해법 찾을 수 있을까

워싱턴=CBS노컷뉴스 장규석 특파원

노컷뉴스

지난해 3월 북한에서 재판을 받으며 울먹이는 오토 웜비어의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영상 캡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열리는 댄스파티를 미국에서는 ‘프롬’이라고 부른다. 고교 졸업생들이 학창 생활을 마무리하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지만, 파티에 입고 갈 턱시도나 드레스를 골라주는 부모에게도 자녀를 이제 성인으로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하는 뜻 깊은 행사다.

북한에 17개월 간 억류돼 있다가 혼수상태로 미국 땅에 도착한 오토 웜비어는 4년 전인 2013년, 자신의 모교인 와이오밍 고교에서 열린 프롬 파티에서 ‘프롬 킹’이었다. 그는 유복했으며, 학교 미식축구 선수였고, 인기 많은 학생이었다.

그랬던 오토 웜비어가 17개월 간의 북한 억류를 끝내고 고향인 미국 오하이오 주(州) 신시내티로 돌아온 것은 6월 13일이었다. 아직 프롬 시즌의 여운이 가시기 전이었다.

삼촌도 이복형도 서슴없이 죽이는 ‘매드 맨(미친 사람)’ 김정은에게서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코에 호스를 꽂은 채, 1년째 의식이 없다는 아들을 보며 웜비어 부모는 이내 슬픔에 잠겼다.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는 아들의 귀환 직후 기자회견에서 아들이 북한에서 재판을 받을 때 입었던 베이지색 재킷을 손수 갖춰 입고, 메인 목을 가다듬으며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 뒤, 웜비어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미국에서 자식 가진 부모라면 그 누구라도 함께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과 장면이 모두 담긴 비극적 스토리가 된 것이다. 과거 북한 억류 미국인 석방과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조차 성명을 통해 “인생에서 부모가 자식을 잃는 일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다”고 애도할 정도였다.

게다가 삼촌을 죽이고, 이복형을 화학무기로 살해한 김정은이 이제 미국의 젊은 대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 핵탄두를 실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북한의 위협도 한층 실감나게 만들었다.

◇ 웜비어 스토리에 감정 이입되는 미국의 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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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웜비어의 사연이 미국인들에게 큰 슬픔과 분노를 자아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여론은 미국이 대북 정책에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매우 좁혀 놨다.

백악관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우리는 분명히 더 멀리 이동하고 있다”며 웜비어 사망으로 북한 김정은과의 회담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졌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치권은 북한관광금지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물론, 하원 외교위원회는 ‘대북제재를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 표명과 함께, 상원에 올린 ‘초강력 대북제재법’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21일(현지시간) 열린 미중 외교안보대화에서도 중국이 미국과 함께 유엔 제재 대상 북한 기업과 사업 거래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는 등, 대북 압박을 보다 강화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인들은 계속 도발하고, 도발하고, 도발하는 정권에 좌절을 느끼고 있다”고 말해, 웜비어 사망에 대한 감정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커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반감은 22일 웜비어의 장례식에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웜비어 가족들이 조용히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장례식 장면이 공개되면 미국에서는 애도 분위기가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정책도 보다 강경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갑자기 돌출된 악재, 그러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 의회나 정부가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억류 중인 미국인 3명을 석방하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점은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인 석방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이 서로 협상 채널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억류 중인 미국인들을 추가로 석방하겠다는 의사를 내놓고, 이후 서로 대화가 진행될 경우에는 의외로 경색된 상황을 풀어가는 단초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도 북한이 추가 석방 의사를 표명하고, 웜비어 사망에 대한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한 연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로서는 북한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악감정도 전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점이 시점인지라 앞으로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특히 일주일 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게 되는 문재인 대통령이 웜비어 사망이라는 돌발 악재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가 이번 정상회담 분위기를 좌우하는 하나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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