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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9 (수)

[세상 읽기] ‘치매국가책임제’가 성공하려면 / 김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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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시민건강증진연구소 소장


치매를 말하려 하니, <포말의 집> <집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환각의 나비> 같은 박완서의 작품들이 생각난다. 하나같이 환자와 함께 ‘파괴’되는 가족과 그 관계를 다룬 소설들이다. “나는 어느 틈에 시어머님을 가족에서 따돌려 가족과 적대관계에 놓고 대결하고 있었다. 이제 견디기 어려운 건 생경한 목소리가 아니라… 허구한 날 군식구를 섬기는 고통…”(<집보기는 그렇게 끝났다> 중).

기억, 감정, 인식, 판단을 훼손하는 만큼, 치매 환자 돌보기가 특별히 힘든 것은 당연하다. 치매를 앓는 가족이 있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이제 누구에게나 부담(감)과 공포가 실재한다. 다들 새 정부가 하겠다는 ‘치매국가책임제’를 환영하는 것도 이 공포 때문일 것이다. 돌봄을 ‘사회화’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할 필요는 없을 터, 미리 몇 가지 걱정거리를 말하고 싶다.

첫 번째는 단연 돈 문제. 치매 환자가 노인 열 명 가운데 한 명꼴, 70만 명이 넘는다는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2050년이 되면 국내총생산의 3% 넘게 돈이 든다는 예상도 있으니, 문제가 크긴 크다. 당장은 낭비분이나 여윳돈을 돌려쓴다 하더라도, 결국 세금, 건강보험료, 장기요양보험료 같은 ‘사회적 기여’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동의가 필요하다.

불평등 문제가 다음이다. 병원 신설이든 본인 부담이든, 정책 당국은 형편이 나쁜 사람의 부담을 줄이는 쪽이 먼저라는 ‘선의’를 품었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실제 사업과 일 곳곳에서 불평등한 조건이 작동하는 것. 가령 도시를 중심으로 인구가 많은 곳에 병원과 지원센터를 만들 수밖에 없다면, 멀리 사는 (가난한) 노인들은 모든 면에서 불리하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지식과 정보, 행정지원, 복지 등도 차이가 크다. 정책을 실행하는 모든 단계에서 형평성을 명시하여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돌봄의 ‘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은 질이 떨어질 조건을 골고루 갖추었다. 환자 자신과 보호자가 질 ‘감독관’ 노릇을 하기 어려운 사정은 바꿀 수 없다 해도, 치매 관리의 ‘상업화’ ‘영리화’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치매국가책임제를 새로운 시장이자 돈벌이로만 여기면, 양질의 진료와 돌봄은커녕 환자의 기본권도 보장하기 어렵다. 돌봄의 어려움 때문에 가벼운 환자까지 시설에 보내는 (질 낮은) ‘시설 수용’이 대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도 걱정스럽다. 삶터를 떠나지 않고 가족이나 이웃과 더불어 살면서 치료와 돌봄을 받는, ‘지역사회 접근’이 양질의 핵심 요소다.

치매 말고도 돌봄 부담을 나누어 져야 할 사람이 많은 것도, 역설적이지만 치매국가책임제가 안고 갈 짐이다. 대표적 예가 발달장애인. 2011년 서울시복지재단이 펴낸 <서울시 중장년 발달장애인가족 복지욕구조사 연구보고서>를 보면 응답자 중 47.7%가 하루 9시간 이상 돌봄 노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돌봄 지속 기간도 34년이 넘는다. 가족에게만 이 부담을 맡겨 놓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치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해도, 결국 치매국가책임제는 ‘돌봄국가책임제’로 확대되어야 한다.

돌봄을 왜 국가가 책임져야 하나? 고령화, 저출산, 경제와 소득, 간병비 부담, 성차별, 이 모든 것은 부차적 이유일 뿐이다. 누구나 품위 있는 삶을 유지하고 적절한 치료와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 먼저다. 생존권, 기본권, 건강권, 그 무엇으로 불러도 좋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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