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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단독 인터뷰]입양前 이름은 ‘김재덕’… 사랑하는 아내 姓따라 ‘손재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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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마크롱 신당서 하원의원 당선… 한국계 입양아 출신 34세 조아킴 손포르제

동아일보

한국인 부인과 함박웃음 손재덕 의원과 부인 손정수 씨가 1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2013년 런던아이 관람차 안에서 했던 결혼 프러포즈 사진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두 사람은 그때 나눈 반지를 지금도 끼고 있다. 제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1983년 7월 서울 마포의 한 골목길에서 버려진 남자아이가 경찰에 발견됐다. 이듬해 1월 프랑스로 입양되기 전 그의 한국 이름은 김재덕. 프랑스에서는 조아킴 포르제라는 이름이 생겼다. 18일 프랑스 총선, 그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 후보로 해외 선거구인 스위스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사이 이름은 조아킴 손포르제, 한국 이름은 손재덕으로 바뀌었다. 한국인 출신으로 프랑스 의원이 된 그와 결선투표를 앞둔 15일 제네바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한국 언론과는 첫 인터뷰였다. 정체성 혼란을 느낄 만도 하지만 그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마크롱 대통령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4월. 그는 “내가 주도하는 ‘다양성 모임’에 당시 경제장관이던 마크롱이 게스트로 참석했다. 북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에서 온 젊은이들을 도와주는 모임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일반 정치인과는 달랐다”고 회상했다.

로잔대 병원에서 영상진단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는 그가 정치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의학을 공부한 것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의사는 일대일로 사람을 돕는데, 정치는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부모 만난 사람만 정치하는 나라도 있지만 그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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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포스터에 마크롱과 나란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손재덕 의원이 나란히 등장한 총선 후보 포스터. 사진 출처 손재덕 의원 트위터


그는 올 5월 마크롱 대통령을 당선시킨 대선과 앙마르슈를 다수당으로 만들어준 이번 총선을 ‘차가운 혁명(Cold Revolution)’이라고 표현했다.

“(프랑스혁명처럼) 왕의 머리를 치는 ‘뜨거운 혁명’이 아니라 민주적 방식으로 이뤄진 또 다른 형태의 혁명이 이뤄졌다. 거대 정당이 무너지고 새 정당이 창당 1년 만에 집권하게 됐다. 그동안 우파는 자유, 좌파는 연대라는 하나의 가치에 집착했다. 그 둘을 합치는 게 마크롱 정신이다. 프랑스혁명의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는 그 둘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지켜내는 게 바로 마크롱 정신이다.”

그는 2012년 사회당에도 몸담았다가 2년 만에 탈당했다. 정치인들이 서로 싸우는 데만 시간을 쓰는 게 너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후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총선에서 그가 몸담았던 사회당은 몰락했다. 현역 국회의원 74.8%가 다시 국회로 돌아가지 못했다.

“자초한 일이다. 그들은 한 세대 동안 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의원이 되는 자기들만의 쳇바퀴에 갇혀 있었다. 거의 같은 사람만 정치하는 현상에 유권자는 염증을 느꼈다.”

그는 가장 시급한 프랑스의 이슈로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 중인 노동개혁을 꼽았다.

“노동시장에 유연하고 리버럴한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 프랑스는 경제적 재앙에 빠져 있다. 스위스만 봐도 고용이 자유롭고, 직업 전환도 훨씬 쉽다. 더 이상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다.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강성 노조들의 반발에 대해서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노동자와 고용자를 대표하는 상황”이라고 그는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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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과 호프 미팅 손재덕 의원이 1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 근처 한 야외 식당에서 유권자들과 호프 미팅을 갖고 있다. 유권자들은 이날 “교실당 학생 수를 줄이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학급 수를 늘릴 공간은 있느냐”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제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손 의원은 인터뷰 직후 근처 식당에서 유권자들과 선거 전 마지막 미팅을 가졌다. 오후 10시, 인터뷰 장소를 그의 집으로 옮겼다.

집에 들어서자 두 살배기 딸이 반겼다. 한국 사람인 부인 손정수 씨(32)는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2013년 친구의 소개로 파리에서 손 의원과 만나 1년 뒤 결혼했다.

그는 ‘손재덕’이라는 이름에 애착이 강하다. “김재덕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보육원에서 지은 것 같다. 어디서 온지도 모르는 성(姓)보다는 사랑하는 부인의 성을 쓰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스위스와 프랑스에서는 원할 경우 부인의 성을 쓸 수 있다.

그는 입양된 뒤 프랑스 중동부 도시 디종 근처에서 자랐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피아노 전문 교육을 받다가 메디컬 스쿨로 학교를 바꿨다. 그랑제콜(명문대학)인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한 뒤 2008년부터 로잔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2009년에는 입양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친부모를 잠깐 찾기도 했지만 내 일이 있고, 새로운 가족도 생겨 더 이상 애쓸 필요는 없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의원 생활 동안 한국과 프랑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했다.

부인은 “남편이 재능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그걸 다 해낸다”며 “그 의지와 열정에 반했다”고 말했다. 매년 한두 번 그는 피아노의 전신인 하프시코드 연주 공연을 한다. 올해 2월에는 제네바 대형 공연장인 빅토리아홀에서 시리아 난민 돕기 공연을 열었다. 코소보 독립과 이스라엘에도 관심이 많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어와 히브리어를 배워 영어 프랑스어까지 4개 언어를 할 수 있다. 부인은 “한국 사람이라 김치를 좋아하는데 아직 한국어가 서툴러 아쉽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34세가 정치하기에 어린 나이가 아니냐고 묻자 그는 발끈했다. “2008년부터 의사로 일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너무 어리다고 하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서도 어린 대통령이 트럼프나 푸틴과 담판을 지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잘 해냈다.”

그는 “전 세계는 소셜미디어로 열려 있다. 이제는 잘나가는 부모 만나지 않아도 능력만 있으면 SNS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 맘껏 펼칠 수 있다”며 한국 청년들에게 오픈 마인드를 가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국회의원은 두 번만 할 것이라고 했다. 두 번 하고 나면 낡은 사람이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또 다른 도전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민간 분야나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수도 있다. 인생 누가 알겠나. 다시 그냥 하프시코드를 치면서 살 수도 있다.”

듣고 있던 부인이 뼈있는 잔소리를 했다. “정치하면서 절대 부패하면 안 돼.”

제네바=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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