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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학부모간 싸움 조장하는 '이랬다저랬다 학폭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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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애만 처벌하나" 항의땐 처분 번복일쑤… 재심청구 급증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불신 자초

日, 학폭땐 경찰이 중심이돼 처리… 英, 범죄심리전문가가 학생 교육

최근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3학년인 대기업 총수 손자와 연예인 자녀가 연관된 학교 폭력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학내 공식 기구인 학교폭력자치위원회(학폭위)의 결정에 피해 아동 학부모가 반발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학폭위를 둘러싼 갈등은 해당 초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에 사는 A씨는 초등학교 6학년 딸이 작년 학폭위에 가해자로 소집된 이후 1년 넘게 피해자 학부모 B씨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작년 6월 A씨 딸은 B씨 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학폭위에서 교내 봉사 처분 등을 받았다. 이에 불만을 가진 A씨는 "B씨의 딸도 우리 아이를 때렸다"며 학교에 '맞신고'했다. 그러자 학폭위는 B씨의 딸에게도 교내 봉사 처분을 내렸다.

학폭위의 처분에 불복(不服)한 B씨는 학교를 대상으로 행정심판을 제기하고 A씨 딸을 폭행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양측의 싸움은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B씨는 A씨의 딸을 두 차례 더 경찰에 고소했고, A씨는 "B씨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A씨는 "학폭위가 오락가락하면서 양측 갈등만 커졌다"고 말했다.

학교 폭력 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학폭위가 오히려 학부모들 사이 갈등을 부추기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학폭위 제도는 미성년자의 학교 폭력이 형사 고소로 이어지는 것을 줄이고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로 2012년 도입됐다. 그러나 실제로는 학폭위 처분을 신뢰하지 못하고 학부모들이 경찰서로 가는 일이 빈번하다. 온라인 공간에 관련된 아이들 신상을 공개하며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한다. 학폭위에 참석했던 한 학부모는 "학폭위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로 주변 학부모들에게 험담을 퍼뜨리고 피해 학생에게 접근해 '사실대로 진술하라'고 위협하는 경우까지 있었다"며 "그럼에도 학교 측은 수수방관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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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갈등은 "학부모들이 학폭위의 전문성이나 공정성 자체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학폭위 의결에 불복해 피해·가해 학생이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2015년 979건에서 작년 1299건으로 급증했다.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학폭위 위원은 50% 이상을 학부모로 구성하게 돼있으며 교원 외에 법조인, 경찰, 의료인 등 전문위원을 선정해 참여시키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작년 초·중·고교 학폭위에서 전문위원 비율은 전체 위원의 15.5%에 불과했다.

선진국에서는 학교 폭력 문제에 학교가 주도적으로 나서되 경찰 등 사법 기관이 긴밀히 관여해 전문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 오사카부에선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해·피해 학생의 담임교사, 교장·교감, 학년 주임 등이 참여하는 '교내 위원회'를 연다. 여기에서 폭력 행위 또는 언어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후부턴 경찰이 중심이 돼 처리한다. 영국은 사법 당국 협력 기관에 소속된 범죄심리학 상담가를 학교에 파견해 가해 학생에게 교육을 실시하는 등 사법 당국이 함께 학교 폭력 문제에 대응한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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