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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속담말ㅆ·미]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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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설교 가운데 은근 많이 나오는 단어가 바로 ‘쭉정이’입니다. 썩었거나 제대로 여물지 못한 벼 이삭은 충실한 무게가 없어 보리 이삭마냥 빳빳이 고개를 듭니다. 그래서 이를 빗대, 신앙을 자랑치 말고 참된 믿음만 가지라 하는 것이지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과 닿아 있습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는 등고자비(登高自卑)는 사실, 높이 오를수록 자신을 낮추라는 숨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또 돈을 많이 번다고 ‘그 사람, 안 그랬는데 변했더라’는 뒷말을 듣게 된다면, 그 사람은 집단 내에서 알게 모르게 쭉정이로 대우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근본 됨됨이가 충실한 사람은 헛되이 우쭐거리거나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지 않습니다. 병에 가득 찬 물은 흔들어도 소리가 안 나고, 물은 깊을수록 소리가 없습니다. 도랑물이 소리를 내지 호수가 소리를 내겠습니까. 그저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러운 법이지요. 요즘 세상에 겸손하면 깔본다고도 하지만, 겸손해서 손해 보는 일보다 은근히 자랑하려다 비웃음 사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사랑과 자랑은 숨길 수 없습니다. 다 티가 나니까요.

자랑의 반대는 겸손이지만,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아도 상대방을 칭찬하고 존대함으로써 겸손의 미덕을 보이고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습니다. 자화자찬으로 스스로 춤춘다면 그것 참 곤란하겠지요.

밥 먹을 줄 안다고 누가 자랑하겠습니까. 똥 눌 줄 안다고 누가 우쭐대겠습니까. 그저 부모의 칭찬을 바라는 어린애나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이지요. 자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직 자연스러운 자기 것이 못 됐다는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잘난 수준을 그만 자랑합시다. 다 보입니다, 그 잘난 수준이.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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