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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디테일추적>'스님이 치킨 먹어도 된다' 이론적 배경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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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스님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현직 승려라 밝힌 글쓴이는 ‘육식 금지’는 잘못 알려진 내용이며, 스님이 개입해 살생한 동물이 아니면 먹어도 괜찮다고 적었다. 매콤함에 불맛을 입힌 한 프랜차이즈 치킨이 맛있다고도 했다.
아무 집 옷장에나 승복을 걸어두는 건 아니니 글쓴이가 실제 스님일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계율을 깬 땡추나 파계승이 아니란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실제 불교 교단에서는 육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상황 따라 괜찮을 수도
한국 불교 장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에 확인한 결과, 조건에 따라 육식이 허용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론에 밝은 조계종의 한 스님은 “불교 교단 계율 집대성인 율장(律藏)엔 세 가지 깨끗한 고기(三淨肉)를 먹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며 “여기 해당하는 고기는 승려 신분일지라도 입에 대도 무방하다”고 했다.

율장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자신의 눈으로 죽이거나 도살하는 장면을 보지 않은 고기, 나를 위해 살생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고기, 나를 위해 살생했다는 의심이 없는 고기는 먹어도 된다 허락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치킨은 대량 생산 체제에서 누구 입에 들어갈지 정해지지 않은 채 일단 죽고 보는 고기니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 반대로 횟감이 될 해물은 손님이 주문을 해야 골라지니 특정성이 생긴다. 즉, 글쓴이 주장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 스님은 “사실 동북아 지역 승려가 고기를 피하게 된 건 석가모니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6세기 초 남북조 시대 양나라 초대 황제인 고조 무황제(武皇帝)가 내린 포고령 ‘단주육문’(斷酒肉文) 영향이다”며 “불가에서 생명을 귀히 여긴다지만 본디 승려는 탁발(밥을 구걸해 먹음)을 하는 수행자기 때문에 고기를 가려먹을 처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실제로 초기 불교와 현시대 남방 불교에선 육식이 허용된다.

달리 말하자면 교리와는 무관한 속세 정부 정책 때문에 승려가 고기를 금했던 게 관습으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왔을 뿐, 공식적으로는 불교계에서도 앞서 말한 세 가지 깨끗한 고기는 허용한다는 것이다. 여담으로 무황제가 고기를 금지하자 당대 승려들이 발명해 낸 게 바로 ‘콩고기’다. 짜파게티나 야채호빵에서 고기처럼 씹히는 동글동글한 그 물질 말이다.

#결혼도 본디 금지는 아니었지만
또한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원래 불교에선 승려의 결혼도 금지사항이 아니라 한다. 조계종 스님은 “본디 법도에선 결혼을 막지 않고 있지만 조계종 교단은 일본 불교와 단절하기 위해 결혼을 금지하게 됐다”며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 불교와 일본 불교를 합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해방 후 이 흔적을 지우고 연을 완전히 끊고자 일본 불교계에선 허락하는 결혼을 우리는 금지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권하라는 건 아니다
이처럼 원칙적으론 승려라 하더라도 깨끗한 고기라면 먹을 수 있는데다, 사찰에 동자승이나 큰 병을 앓는 승려가 있으면 성장과 회복에 보탬을 주고자 일부러 고기를 들여오기도 한다. 그러니 어쩌다 승려 있는 곳에 육류가 들락날락하는 모양새를 보더라도 섣불리 세상 말세라 여기진 말자.

다만 교리에 어긋남이 없는 깨끗한 고기라한들 불도자에게 시식을 권하는 건 웬만하면 삼가도록 하자. 불교 전체적인 원칙과는 별개로 종파별로 제한을 두는 경우도 있고, 설령 종파에서까지 허락한다 해도 수행과 구도에 방해되지 않도록 일부러 육식을 자제하는 분들도 상당수기 때문이다. 그분들도 다 원래 교리에서는 허용되는 거 잘 알면서도 뜻이 있어 육식을 피하시는 거니 존중해 드리도록 하자. 물론 글 맨 처음에 언급한 현직 승려처럼, 계율에 어긋나지 않게 먹겠다는 걸 굳이 말릴 이유도 없지만.

[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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