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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샤워기 구멍,화장실 나사못이 당신의 몸을 노린다…'몰카 보안관' 따라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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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 박광미(오른쪽)씨가 1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헬스장의 샤워실과 탈의실에서 적외선 탐지기의 불빛을 이용해 몰래 카메라를 탐지하고 있다. 김상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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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헬스장의 여성 샤워실. 김태성(60·여)씨가 무전기 비슷한 모양의 기기를 샤워기에 댔다. 물줄기가 나오는 작은 구멍을 찬찬히 훑으며 샤워기 3개를 모두 점검했다.

비누 거치대와 수도꼭지 주변도 같은 방식으로 살폈다. 샤워실을 둘러본 뒤 김씨는 탈의실 보관함의 열쇠구멍, 벽걸이형 방향제에도 기계를 갖다 댔다.

김씨가 손에 든 기계는 ‘전자파 탐지기’다. 샤워기 등에 장착됐을 수 있는 몰래카메라를 탐색하는 것이다. 탐지기는 몰카의 전자파를 감지하면 경보음을 낸다.

김씨와 함께 박광미(49·여)씨는 붉은 빛을 쏘는 ‘적외선 탐지기’의 렌즈(8mm)에 눈을 대고 샤워실의 타일 틈을 꼼꼼히 확인했다. 탐지기에서 나오는 적외선이 몰카를 반사하는 원리로 몰카를 찾는다. 신용카드 크기의 장비는 손이 닿기 힘든 탈의실 천장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다.

한 시간에 걸쳐 헬스장을 ‘이 잡듯’ 살핀 두 사람은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다. 이날 용산경찰서 생활안전과 김보람(29) 순경과 함께 몰카 단속에 나섰다. 김 순경은 탐문 수사를 한다. 탈의실에 놓인 시계ㆍ로션 등을 가리키며 “혹시 못 보던 물건이 있느냐”고 헬스장 관리인에게 물었다.

헬스장 점검을 마친 이들은 인근 주민센터의 공중화장실로 이동했다. 김씨와 박씨는 번갈아가면서 탐지기를 이용해 변기와 휴지통 안을 살폈다. 화장실 문에 박힌 나사못까지 훑었다. 화장실 한 칸을 살피는데만 20분이 걸렸다. 좁은 화장실 안에 있던 보안관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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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 김태성씨가 12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공중화장실의 변기 안을 전자파 탐지기로 훑어보고 있다. 김상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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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물 처리반’보다 더 신중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은 20~60대 여성 50명으로 구성된다. 서울시가 지난해 8월부터 몰래카메라 범죄 예방을 위해 운영 중이다. 경력 단절 여성과 취업 준비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뷰 등을 거쳐 선발했고 소정의 활동비를 받는다. 이들은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9개월간 4만431곳(3월말 기준)을 점검했다.

다가오는 여름은 이들에겐 비상 기간이다. 서울시와 서울경찰청은 이달 8일부터 26일까지 공중화장실과 탈의실 등 358곳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 특별점검’을 벌였다. 서울에서 발생한 몰카 범죄 건수는 2012년 990건에서 2015년엔 3638건에 달했다.

화장실 한 칸을 살피는데 20분 씩이나 걸릴 정도로 몰카 기술은 발달했다. 김 보안관은 “몰카를 숨기는 장소가 상상을 초월한다. 렌즈가 바늘구멍(1mm)만한 몰카까지 있다. 그래서 구멍이란 구멍은 다 훑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탐지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2인 1조로 활동하는 보안관에게 서울시가 제공하는 최신형 전자파ㆍ적외선 탐지기가 ‘무기’다. 서울시는 이 기기를 각각 25대씩 보유하고 있다.

대당 200만원에 달하는 전자파 탐지기(320g)는 몰카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감지해 경고음을 내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적외선 탐지기는(대당 10만 원대)는 몰카 렌즈에 빨간 불빛을 반사시키는 방식으로 숨겨진 몰카를 찾아낸다. 보안관들은 매월 한 차례 보안업체 전문가에게서 교육을 받는다. 신종 몰카 출몰지나 새로 개발된 몰카의 종류 등을 숙지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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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적외선 탐지기는 몰카 렌즈에 빨간 불빛을 반사시키는 방식으로 숨겨진 몰카를 찾아낸다. 뒤에 보이는 전자파 탐지기는 몰카의 전자파를 감지하면 경고음을 낸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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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 점검이라는 ‘첨단’ 업무에는 어려움도 많다. 건물주가 ”우리 건물엔 그런 거 없다“고 거부하거나, 되레 “몰카를 설치해 놓고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건물주들이 먼저 탐지를 의뢰할 정도로 입소문이 났다. 두 딸의 엄마이기도 한 박 보안관은 “‘내가 몰카범이라면 어디에 숨길까’라고 역발상을 해가며 점검을 한다”고 말했다.

김 순경은 “몰카로 의심되는 물건을 발견하면 떼어내지 말고, 지문 채취와 범인 검거를 위해 112에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몰카를 찍다가 걸리면 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처벌과 단속에도 불구하고 ‘몰카공포증’은 확산되고 있다. USBㆍ단추ㆍ펜 등 일상용품처럼 생긴 100여 종의 몰카를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입법 청원 사이트 ‘국회톡톡’에선 네티즌 1만6000여 명이 ‘몰카 판매 금지법’에 서명하기도 했다. 최근엔 몰카 피해 여성의 영상 삭제를 무료로 돕는 시민단체(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도 생겼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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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용품처럼 생긴 몰카의 종류는 100여 종에 이른다. 몰카가 내장된 UBS형 몰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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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형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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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걸이형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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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기형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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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열쇠형 몰래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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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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