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style;this week]나도 근사한 은발 헤어로 늙고 싶다

댓글 10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연륜, 전문적 이미지로 새로운 패션 전략된 은발

자연스러움 추구하는 최근 트렌드에 부합

젊은 스타일링 더해야 은발의 가치 올라가

중앙일보

21일 사상 첫 여성 외교부장관에 임명된 강경화 후보자. [뉴시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도 염색 안 하고 자연스럽게 늙고 싶다.”
요즘 여성 지인들을 만나는 자리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다. 모두 30대, 아직은 흰머리가 날 정도의 연배들은 아니기에 막연히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일 테지만 제법 깨달은 바가 있다고들 한다. 지난 21일 지명된 외교부 장관 강경화(62) 후보의 모습에서 말이다.

강 후보자가 지명되자마자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비 외무고시 출신에 비서울대 출신, 최초의 여성이라는 특별한 이력에 더해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외모도 한몫했다. 이번 문재인 정부의 전반적으로 훌륭한 외모 덕에 나온 우스갯소리인 ‘외모 패권주의’의 정점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중앙일보

보기 드문 은발 헤어와 세련된 패션 스타일로 주목받고 있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물론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서 검증받는 과정에서 자녀의 이중국적, 위장 전입 등 논란이 불거져 첫 발탁 시점의 신선함은 한결 퇴색됐다. 다만 강 후보자가 은발을 휘날리며 UN 등 국제무대에서 일하는 모습은 기존 한국 정치인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한 이미지였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특히 반백의 헤어는 한국 여성 리더의 스타일 사(史)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해도 좋다.

UN 정책특보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해 온 강경화 후보자. <저작권자 ⓒ 1980-201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강 후보자의 외모는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더 주목받았다. 핵심은 역시 흩날리는 은발이다. 흔히 염색하거나 뽑는 것으로 존재를 부정당해야 했던 흰머리가 머리 대부분을 뒤덮고 있는 강 후보자의 은발 헤어는 파격 그 자체다.

흰머리는 노쇠의 상징이다. 사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노화의 흔적은 되도록 지우는 것이 미덕이다. 남성도 그럴진대, 하물며 여성이라면? 유난히 젊은 몸, 어려보이는 얼굴에 가치를 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흰머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심지어 사적인 영역에서도 터부시되어 왔다. 흰머리가 한 가닥이라도 보일라치면 곧바로 새치 염색약을 찾는 중년 여성들의 호들갑이 당연시되었다. 흰머리는 늙음을 그대로 방치하는 게으름, 자기 관리에 소홀함을 드러내는 약점으로 여겨졌다.

이런 약점을 당당히 드러내고, 본 모습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이런 강 후보자에게 대중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실제로 강 후보자가 2012년 5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염색 하지 않는 이유도 화제가 되었다. 강 후보자는 인터뷰에서 “2008년쯤 새해 결심 중의 하나로 ‘염색 안하기’를 정했다”면서 “본 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밝혔다. 이런 강 후보자의 모습에 특히 여성들이 열광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벽을 마주하며 좌절하는 여성들에게 강 후보자의 은발은 유리 천장을 돌파한 성공한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한다.

중앙일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 [중앙 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고위직 여성 리더의 백발은 사실 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등은 은발로 국제무대를 누빈다. 흰머리는 노화를 상징하는 동시에 긴 세월동안 쌓인 전문성, 연륜을 내포한다. 신뢰와 전문성을 어필해야하는 정치인들에게 은발은 나쁜 선택이 아니란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여기에 파격과 솔직함, 당당함이라는 긍정적인 가치가 더해졌다. 그동안 노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은발을 가리지 않고 당당히 드러내는 여성이 드물었던 까닭이다.

중앙일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로이터P=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심지어 TV 등 대중 매체에서도 백발의 여성은 낯설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터널(OCN)’에서는 백발의 쪽진 머리를 한 여교수가 등장한다. 바로 배우 문숙(63)씨다. 주인공에게 조언을 해주는 멘토 역할이다. 어쩐지 낯선 캐릭터다. 그동안 TV 속 백발의 여성을 떠올려보자. ‘전원일기’ 속 할머니 역할을 제외하고 백발의 여성이 주요 캐릭터로 등장한 예가 또 있었을까? 외모가 중요하지 않은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흰머리가 드문 와중에 외모로 먹고 사는 배우들 사이에서 백발은 쉽지 않은 선택지일 것이다.

중앙일보

백발의 긴 머리를 고수하는 배우 문숙. [중앙 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존 질서를 뒤집는 반백의 헤어는 젊은 스타일링과 맞물려 시너지를 선사한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은 “은발 자체가 당당한 느낌을 준다기보다 젊은 스타일링이 더해져 파격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후보자의 경우 보통 중년 여성이 선택하지 않는 곧은 단발 스타일이다. 배우 문숙씨 역시 중년 여성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긴 생머리 스타일이다. 강 소장은 “같은 은발이어도 보통 중년 여성이 할 법한 짧은 머리에 웨이브 펌 헤어를 했다면 카리스마보다는 온화하고 편안한 느낌이 도드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의 패널로 등장하는 박수홍씨의 모친을 떠올려보면 쉽다. 완벽한 백발이지만 흔히 말하는 ‘아줌마 펌’을 하고 있기에 세련되기보다 우아하고 고운 느낌의 어머니 이미지로 소구된다.

중앙일보

'미운 우리 새끼'에 등장한 박수홍씨의 모친. 스타일링에 따라 같은 백발도 다르게 연출된다. [SBS 화면 캡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연스러운 흰 머리의 미학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희 헤어 디자이너(이희 헤어&메이크업 소속)는 “자연스러운 것이 최대 미덕인 요즘에는 흰머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는 40·50대에는 염색을 하더라도, 흰 모발의 양이 많아지는 60·70대에는 염색 하지 않고 본래 모발을 살려주는 스타일링이 인기”라고 전해왔다. 염색을 하더라도 무조건 검정 염료로 헤어를 물들이던 과거와는 달리 밝고 은은한 컬러를 선호하고, 염색 대신 펌이나 커트로 스타일링에 변화를 주는 중년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조건이 있을 때 은발의 아름다움은 더 살아난다. 강진주 소장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골격이 강한 사람에게 은발을 추천한다”며 “모발이 풍성할수록, 두껍고 힘이 있을수록 스타일이 살아난다”고 조언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SNS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포스트]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전체 댓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