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9 (수)

백발의 발레리노… 70대, 웹툰의 주인공이 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은퇴 후 발레 도전기 '나빌레라'

'하이브' 조연이던 70대 남성은 '할아브'로 불리며 주연보다 인기

70세. 종심(從心).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하는 나이. "늙음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웹툰 '나빌레라'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이 일흔을 몇 달 앞두고, 익숙해짐에 나약한 마음이 생겨났다." 은퇴한 우체부 심덕출(70)씨가 어릴 적 꿈인 발레에 도전한다는 내용의 이 웹툰은 소설가 은희경(58)씨 등 중·장년층 팬까지 흡수하며, 영화·드라마화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

70대가 웹툰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다. '나빌레라' 스토리를 맡은 만화가 최종훈(39)씨는 "인생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라며 "가장 의외의 스토리를 생각하다 보니 70세 남자와 발레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쫄쫄이 바지 입고 웬 추태냐" "창피하게 굴지 말고 게이트볼이나 하라"며 핀잔 주던 자식들도 아버지의 진심을 이해하곤 응원하기 시작한다.

조선일보

①17세 몸으로 돌아간 77세 부부 이야기 '살아말아'. ②70대 근육질 남성이 주연 이상의 인기를 누리는 '하이브'. ③70세 남자의 발레 도전기 '나빌레라'. /다음 웹툰·네이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웹툰은 '이원국 발레단'으로부터 전문적 조언을 얻는다. "이원국(50) 단장 말로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70대라면 1년 안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더군요." 70세 심덕출과 23세 발레리노 이채록의 하모니도 감동 요소.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원작자로 유명한 최씨는 "20대와 70대는 가장 멀리 있는 존재라 생각하기 쉽지만 꿈을 좇고 있다는 점에선 같다"면서 "독자가 끝까지 자신의 열망에 충실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이 성인 남녀 100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노인 이미지에 호감을 표한 응답자는 3명 중 1명꼴인 34%에 그쳤다. 만화는 현실을 전복시켜 반전을 가한다. 시즌3까지 진행 중인 인기 웹툰 '살아말아'는 이혼의 기로에 선 77세 동갑내기 육갑·청순 부부가 신비한 동전의 힘으로 17세 몸으로 돌아가는 판타지 로맨스. 순정만화 스타일의 작화로 되살려낸 노인은 더 이상 노인이 아니다. 만화가 고은(34)씨는 "몸이 변하면서 정신도 따라 젊어지는 설정"이라며 "우리 70대 친할머니도 소녀 같은 면이 많은데 노년의 천진한 모습을 젊은 감각으로 재현해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젊은 작가의 노인 웹툰이다 보니 편견을 자제하려고 애썼다. "노땅처럼 과장해 웃기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너무 몰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보여주고자 한 건 노인과 청춘의 거리감이 아니라 친밀감이니까요."

웹툰 '하이브'는, 조연이었던 할아버지 캐릭터가 30대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처럼 돼버린 경우다. 미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거대 벌레군단과의 전쟁 한가운데서 가장 냉철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 웹툰 표지(섬네일)에도 할아버지만 단독 등장하고, 독자들마저 제목을 '할아브'라고 고쳐 부를 정도다. 김규삼 작가는 "힘없고 뒤로만 물러나 있는 기존의 70대 이미지를 반대로 그려내 신비와 반전의 효과를 노렸다"고 했다. 백발에 표독한 표정, 근육질의 이 캐릭터는 지난 22일 연재분에서도 작전을 지휘하고, 적들을 격파했다.

[정상혁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