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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文강경발언, 노·사·정 테이블 앉기전에 재계 기선제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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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文대통령, 경총 작심비판 ◆

매일경제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위 경제1분과의 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청와대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강력 비판한 것은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정기획위가 먼저 경총 비판 의견을 냈고, 청와대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의견을 확인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양측이 사전 협의를 하지는 않았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 특히 이날 국정기획위에서는 정부 정책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노동계 등은 만날 의향이 있다면서도 재계는 굳이 만날 필요가 없다는 '더 강력한' 목소리까지 나왔다. 앞서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지난 25일 경총포럼에서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이라며 정부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비판했다. 이에 국정기획위는 26일 정오께 예정에도 없는 긴급 브리핑을 열고 '국정기획위 입장' 형식으로 경총에 대한 강력한 비판문을 발표했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책임 있는 당사자이면서 핵심 당사자인 경총의 목소리로는 적절치 않다"며 "비정규직 문제가 어쩔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효율적이다' '외국도 비슷하다'고 하는 건 지극히 기업의 입장만을 반영한 것이다. 대단히 유감"이라고 표현했다. 또 "(경총이) 단 한마디 반성 없이 비정규직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건 참으로 문제가 있고, 보는 눈이 안이하다"고까지 했다. 이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2시 50분 기자간담회에서 국정기획위 입장을 거의 그대로 담은 듯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어제(25일) 경총 측 발언은 마치 '정부가 민간 기업에 일방적으로 일자리 정책을 강압하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런 경총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을뿐더러 정부 정책을 심각히 오독하고 있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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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경총을 비판한 국정기획위 측은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오후 4시 정례 브리핑에서 "청와대에서도 같은 취지의 얘기가 나왔다고 들었다"며 "청와대와 상의한 것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수용할 만한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총 측 비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었다"고 거듭 꼬집었다.

이날 청와대와 국정기획위가 동시다발적인 경총 비판에 나선 것은 이해단체들의 반발에 초반부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재계 전반에 일자리 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조성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비정규직 양산에 책임이 있는 경총 측이 정권 초반부터 정부의 최대 역점 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 주도 성장의 원천은 양질의 일자리에 따른 국민 소득 증대인데, 고용 창출로 이를 책임져야 할 재계가 핵심 국정 과제를 나 몰라라 한다면 일자리 정책 자체가 좌초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경총 행사에서의 정부 일자리 정책 관련 비판 보고를 받고 "사실 관계를 왜곡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영배 부회장은 이날 행사에서 "정부가 획일적으로 (비정규직을) '좋다 나쁘다' '된다 안 된다' 식의 이분법적 접근을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떤 정책이든 이견이 있을 수 있고 정부와 문 대통령은 정책 소통을 위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어제 김 부회장의 발언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 의지에 대한 곡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앞으로도 사실 관계가 잘못된 비판이 나온다면 적극 반박하겠다는 뜻이다. 나아가 정권 초반 주요 정책에 대해 강하게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재계 목소리를 들을 여지를 남긴 청와대와 달리 앞으로 5년간 문재인정부 주요 정책을 결정할 국정기획위는 '재계는 만나지 않겠다'는 더 강경한 입장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난 22일부터 분과별로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는 국정기획위는 다음주부터 국정과제별로 현장 파악이 필요한 곳에 나가 현장 목소리를 듣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날 오후 서울 통의동 국정기획위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진표 국정기획위 위원장은 '재벌 총수나 재계 쪽을 따로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총수들은 경총이나 든든한 후원 기관이 있어서 입장을 잘 반영한다"며 "(우리는)그런 목소리를 갖지 못한 현장 사람들을 만나 애로 사항을 듣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시영 기자 / 오수현 기자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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