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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美는 바로 상담원, 한국은 10단계 '미로'…분통터지는 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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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는 한국금융 ARS <上>

글로벌 기준에 한참 뒤처져

조선일보

30대 직장인 A씨는 이달 초 연휴 때 신용카드 콜센터에 전화했다가 분통이 터졌다. 부가 서비스로 가능한 무료 주차 횟수가 몇 번 남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전화 문의를 하려 했지만 통화 연결에 실패했다. 주말엔 분실 신고 등 사고 관련이 아니면 상담원 연결이 되지 않는다고, 녹음된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미국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다 지난해 돌아온 B씨는 미국에서 쓰던 카드를 해지하지 않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카드 뒷면에 있는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은 주말 낮, 미국 동부 시각으론 토요일 오전 2시쯤 되는 때였지만 혹시나 하고 걸어 보았는데 상담원이 받았다. 그는 “전화 연결이 바로 되어서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금융회사들이 소비자 편의를 위해 콜센터를 업그레이드했다고 저마다 홍보하고 있지만 선진국 및 글로벌 금융회사와 비교하면 여전히 상담 가능한 시간이 짧고 사용하기도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IT(정보기술) 강국임을 강조하며 ‘말로 하는 ARS’ ‘보이는 ARS’ 등을 개발해 상담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는데, 고령층이나 바쁜 직장인들에겐 이런 복잡한 선택 과정이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서만 낯선 24시간·365일 상담

본지가 한국의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9개 카드사, 3대 생명보험사, 5대 손해보험사 등의 콜센터를 조사한 결과 24시간·365일 일반 상담(분실신고 등 금융 사고와 관련된 상담 제외)이 가능한 금융사는 없었다. 지난달 영업을 개시한 한국의 첫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Kbank) 한 곳만 상담원을 통한 24시간 상담을 할 수 있었다.

금융 소비자의 불편이 크다는 지적이 많아지자, 은행들은 지난 2년에 걸쳐 콜센터 상담 시간을 연장했다. 그럼에도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하면 상담 시간은 매우 짧았다. 대형 글로벌 금융사 중 대부분은 한국인에겐 낯선 365일·24시간 상담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세계 10대 은행(자산 기준) 중 중국 건설은행,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 두 곳을 뺀 8개 은행은 모두 언제든지 상담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은행은 평일엔 13시간(신한·우리은행) 혹은 14시간(국민·KEB하나은행)만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말에 통화 가능 시간이 6시간으로 단축되는 은행(신한은행)도 있었다.

25일 오전 6~7시에 걸쳐 한국과 해외 금융회사의 콜센터에 실제로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한국의 4대 은행은 모두 연결이 안 됐다. 반면 세계 최대 은행은 중국 공상은행은 전화를 걸자마자 “니하오”, 일본 최대 은행 미쓰비시UFJ은행은 오전 6시 30분임에도 신호음이 간 지 10초 만에 “모시모시”라고 응답하는 등 10개 은행 중 8개 은행은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미국 카드사는 즉각 응답, 한국 콜센터는 10단계

상담원과 연결하기까지의 과정도 한국 금융회사가 훨씬 복잡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주요 콜센터는 대부분이 전화하는 즉시 사람이 응답을 하고,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그 다음에 듣는다. 이에 비해 대부분의 한국 금융회사는 반대로 소비자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일일이 ARS 번호 입력을 통해 금융회사에 알려준 다음에야 상담원이 응대한다.

미국 ‘디스커버 카드’ 콜센터에 카드를 해지하는 상황을 가정해 전화를 했더니 50초 만에 상담원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똑같이 카드 해지를 하려고 한국 A신용카드사에 전화를 건 결과, 열 단계를 거쳐서야 상담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길어지는 통화에 대한 전화 요금은 대부분 소비자가 부담(1분당 약 30원)해야 한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금융국장은 “금융회사 콜센터의 통화 대기 시간뿐 아니라 민원 상담에 대한 전화 요금을 모두 소비자에게 부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김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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