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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잔심부름에 명의대여까지, 은행 인턴도 서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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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미생 불만 봇물

뉴스1

© News1 방은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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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정연주 기자 = "은행에서 인턴 근무 중인데요, 과장님이 제 명의로 증권연계계좌를 만들고 관리는 본인이 하겠다면서 신분증을 달라고 하네요. 찝찝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익명 카페에 상담 글이 하나 올라왔다. 모 대학 학부생인 A씨는 대형 은행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인턴 직원이다.

댓글은 '절대 해주지 말라'는 내용이 다수다. 명의대여는 엄연한 불법. 남의 명의를 가져간 사람뿐만 아니라 명의를 빌려준 사람도 처벌받는다. 그런데도 A씨가 고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영업점 평가 때문이다.

인턴은 보통 '을 중의 을'로 불린다. 적은 월급에 정규직 보장도 불투명하고 합격하기도 쉽지 않다. 은행에선 인턴 경험이 중요해 한 자리에 수십명이 달려든다. 취업에 목마른 22~26세의 젊은 학생들에게 3~5개월간의 금융권 인턴 타이틀은 높이 평가받는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인턴 직원의 약 10%를 우수 인턴으로 선정했고, 이들에게는 면접 때 혜택을 준다.

하지만 A씨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과거 명의대여로 홍역을 치렀던 금융권에서 범법 행위를 권유하는 셈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턴으로 근무하던 지인이 카드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님 핑계로 거절하라고 조언해준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도 "정말 흔한 일이다. 심지어 공채 교육 중에도 제안을 받았다"며 "하나 만들고 인턴 기간이 끝나면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적인 업무까지는 무리더라도 은행 업무를 경험해볼 시간이 적다는 불만도 나온다. 인성 등을 판단하는 정성평가와 조별 과제를 수행하는 정량평가로 나뉘는데, 정성평가의 비중이 절반 이상인 경우도 있다. A씨는 "은행원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로비 매니저의 역할만 주어져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인턴의 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책 코드는 '일자리'에 맞춰졌다. 하지만 해결은커녕 일자리 숫자 늘리기에 급급해 수많은 비정규직만 양산했다.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청년인턴제와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정책이 대표적 예다.

문재인 정부도 출범 직후부터 일자리 정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핵심은 '비정규직 해소'.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매년 습관처럼 뽑는 인턴 직원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적다.

은행도 할 말은 있다. 돈을 다루는 창구 업무를 함부로 맡길 수도 없으니 인턴 채용 비용으로 공채 인원을 더 늘리는 것이 낫다고 본다. 인공지능(AI)이 점령한 디지털금융 시대에서는 채용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욱 떨어진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이 공채로 뽑은 일반직 인원은 900명. 전년보다 무려 40%가까이 줄었다. 올해 상반기 중 정규직 신입행원 공채에 나선 시중은행은 농협·신한은행과 우리은행 3곳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턴 직원의 복지나 처우 개선까지 논의하기는 쉽지 않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오랜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디지털금융 시대에 사람과 창구를 모두 줄여나가면서 은행원의 정체성도 흔들리고 있어, 인턴 A씨의 사례는 실적 압박 등으로 과거와 달라진 은행권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jy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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