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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트럼프의 '어떤 조건'에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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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브리핑] 미국과 북한의 틈, 한국이 채워야 한다

5월 21일 북한이 고체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2형'을 발사했다. 지난 2월 최초 발사 이후 두 번째이다. 북한은 실전 배치를 위한 발사였다고 밝히고 있다. 5월 14일 북한이 새로운 액체형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인 '화성 12호'를 시험 발사한 지 겨우 일주일 만이다.

화성 12형의 경우에는 비록 날아간 거리는 800킬로미터(km)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최대 2000km 이상 공중으로 치솟았다. 정상적으로 발사했다면 족히 5000km는 날아갔을 것이라고 하니, 지금까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가장 멀리 날아간 셈이다.

북한은 지난 15일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 본토와 태평양작전지대가 타격권에 들어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더 크고 무거운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고까지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고도화 수준이 상상 그 이상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수준은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지형을 요동치게 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7일 취임 후 처음으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급격하게 고도화되고 현실화됐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만약 북한이 실제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이 어떠한 행동을 보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 때가 되면 우리와 중국이 말린다고 해서 미국이 인내와 자제력을 보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우려했던 군사적 옵션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지난 14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인 화성 12형 ⓒ노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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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후 지난 1년여 간 북한은 두 번의 핵실험과 30여 차례 이상 미사일을 발사했다. 2017년 들어서만 새로운 탄도미사일인 북극성 2형과 화성 12형에 이르기까지 벌써 8차례 발사했다. 지난 4월 15일 군사퍼레이드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ICBM을 두 가지나 공개했다.

지금 북한은 추가적인 핵실험보다 투발수단인 탄도미사일의 다양화와 신뢰성 확보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탄도미사일의 능력이 향상될수록 더 큰 폭발력을 지닌 핵탄두 개발을 위해 추가적인 핵실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북한이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 핵미사일 고도화에 더욱 집착하고 있는 것은 김일성‧김정일 시기에 있었던 개발 의도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은 시기 핵무력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는 단순히 미국과의 협상 수단이 아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핵무기가 더 이상 정치적 흥정물이나 경제적 거래물이 아니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핵은 그저 현존하는 미국이나 남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지력이 아니다. 미래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대내외 모든 위협을 막아내는 '만능의 보검'으로 세습정권을 유지하고 영속화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이제 핵무력은 북한 세습정권의 생존 그 자체이다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가속도를 내고 있기도 한데, 이는 김정은 스스로 조급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지난해 7차 당대회 이후 북한은 당 중심의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바탕으로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을 수립했다. 다음 제8차 당대회 개최 시기는 사회주의 강성대국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재와 같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과 제재 국면에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여전히 존재하는 대외 안보적 위협 하에서 핵을 포기할 수도 없다. '핵포기의 딜레마'이자 '핵보유의 딜레마'가 공존한다. 이것은 미국과의 '단판'으로만 풀 수 있다.

그래서 예측하기 어려운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은 북한에게 위기이자 기회이다. 지금까지의 판을 갈아엎고 새판을 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트럼프와 새로운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고도화에 속도를 내는 것도 결국 미국과 본 게임을 앞둔 몸부림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최근 북한의 일련의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에게 북핵미사일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면서도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시켜 게임의 시작을 앞당기려는데 첫 번째 의도가 있다. 설령 미북 간 본 게임이 조기에 열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협상카드를 늘리고 몸값을 극대화시키려는 협상 전 포지셔닝, 힘겨루기 싸움이 두 번째 의도다.

북한은 게임 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확실한 협상카드로 만들려고 할 것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ICBM을 가졌다고 인정하기 싫은 상황이다. 아직 선수 선발도 못한 트럼프는 나날이 핵 '맷집'이 늘어가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직접 나서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북한이 그저 조용히 기다리고 있어주기를 바라며 핵항모 칼빈슨이나 전략폭격기로 군사행동을 시사하며 협박을 해보고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봄 한반도에 불어 닥친 북폭설에도 불구하고 미북 간 본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들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 특사인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어떤 조건이 된다면 관여를 통해서 평화를 만들어 나갈 의향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미국이 대화 쪽으로 중심을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 기조가 '힘을 통한 평화'이고 '최대 압박과 관여'를 새로운 대북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관여를 위한 최대의 압박' 국면이다. 여전히 미국은 북한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트럼프에겐 우선 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여전히 북한은 그 다음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관여를 위한 '어떤 조건'이 북한의 핵포기 선언이라고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바뀔 수 없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은 과정이지 선후관계가 아니다. 북핵문제 해결 만을 앞세운다면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 기다릴수록 북한의 핵미사일은 점점 더 고도화되고 북핵문제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 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북한의 핵미사일이 더 이상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고도화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은 향후 북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 역시 "북한이 핵,미사일 관련 실험을 전면 중단한다면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때 그렇게 할 걸"이라며 자조 섞인 후회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된다. 역사에 '만약(if)'이란 없다.

북핵문제 해결의 방향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한다. 북한이 앞으로 더 정교하고 고도화된 핵미사일을 보유하게 될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일단은 개발을 중단시키는 이른바 '동결'이 급선무다. 그 다음 현재의 핵능력을 폐쇄, 봉인, 검증하여 되돌릴 수 없도록 불능화하고, 과거 만들어 놓은 핵까지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

지금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 조차도 힘겨워 하고 있다. 그 틈새를 우리의 역할로 채울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야기하는 '어떤 조건'에 '남북관계 개선'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에게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미북 관계의 진전도 없다고 한다면 북한은 핵 문제에 있어서도 남한을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우리 정부 역시 한미동맹과 남북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공조를 적극 활용할 때,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를 차단하고 더 이상 '몸값'을 올리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보다 넉 달 늦었지만 한국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시작은 네 발자국 늦었지만 한 발자국 앞서나갈 수 있는 기회이다. 향후 '6자 회담을 통한 비핵화'든 '4자 포럼을 통한 평화체제'든 우리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북한이 더 이상 핵미사일을 고도화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방통일 등 안보분야 인선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 :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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