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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세계는 지금] 독자 개헌 구상에 반기 든 日 여당…'아베 1강 체제'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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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리 후보들 ‘포스트 아베’ 각축

세계일보

굳건해 보이던 ‘아베 1강’ 구도가 최근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숙원으로 꼽아 온 ‘헌법 9조’ 독자 개정안을 내놓은 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에서 돌발 과제가 나타나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의 말이라면 모두 ‘예스’를 외치던 집권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도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심 드러낸 ‘헌법 9조’ 개정 야욕… 반발 촉발?

일본 헌법 시행 70주년을 맞은 지난 3일 아베 총리는 깜짝 선언을 했다. 헌법 9조 1항(전쟁 포기)과 2항(군대 보유 금지)을 그대로 둔 채 자위대의 존재를 명기하는 3항을 추가하고, 개정 헌법을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 시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는 2012년 자민당의 개헌 초안과 완전히 다르다. 당시 자민당은 헌법 9조 1항과 2항을 모두 바꾸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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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테러대책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지난 16일 도쿄 국회 앞에서 ‘아베 개헌 중단하라’, ‘공모죄는 안 된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도쿄=EPA연합뉴스


그동안 자민당은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을 고려해 이를 미뤄두고 다른 항목을 앞세워 우선 개헌의 물꼬부터 트는 방향으로 최대 야당인 민진당 등과 중·참의원 헌법심사회에서 개헌 논의를 진행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더디자 어떻게든 자신의 임기 때 헌법 9조를 개정해 시행하고 싶었던 아베 총리가 ‘독자 노선’을 선언한 것이다. ‘아베 1강’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자민당 내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차기 총리감으로 꼽히는 당내 파벌 수장들이 아베 총리의 독단적인 행동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자민당의 개헌 초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패배주의”라고 비판하며 아베 총리의 개헌 구상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또 “헌법에 대한 강한 의식도 없이 개정을 허둥지둥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며 당내 철저한 논의를 요구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도 “헌법 9조를 지금 바로 개정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에 가세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다. 22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한 방송에 출연해 자신의 구상을 바탕으로 한 “자민당 개헌안을 연내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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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구도 개편… 내년 총재선거 대비?

자민당 내 3개 파벌의 수장이 지난 15일 한자리에 모여 통합을 논의했다. 아소파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 산토파의 산토 아키코(山東昭子) 전 참의원 부의장, 최근 새로운 파벌을 만든 사토 쓰토무(佐藤勉) 중의원 운영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각각 파벌을 해산한 뒤 합류해 새로운 파벌을 결성하기로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파벌의 회장은 아소 부총리가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통합 파벌이 출범하게 되면 의원 수 60명으로 당내 둘째 파벌이 될 전망이다. 현재 자민당의 파벌은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파(96명), 누카가파(55명), 기시다파(46명), 아소파(44명), 니카이파(41명), 이시바파(20명), 이시하라파(14명), 산토파(12명) 등이 있다.

2015년 아베 총리가 자민당 총재 연임에 성공했을 때는 단독 출마였다. ‘절대 권력자’인 아베 총리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해 누구도 입후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 선거는 다른 양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3연임을 할 가능성이 크더라도 파벌 수장으로서 최소한 출마하거나 다른 파벌을 지원해 영향력을 보여줘야 ‘포스트 아베’에 도전할 자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과 기시다 외무상이 최근 당내에서 부쩍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베 개헌 구상’ 찬성 13%… 국민 지지 흔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20∼2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개헌 시행 시기를 2020년으로 제안한 것에 대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59%로 “서둘러야 한다”(26%)는 답변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개헌을 서두르려는 아베 총리의 생각과 국민이 느끼는 개헌의 시급성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또 아베내각 지지율은 전월 대비 5%포인트 하락한 46%로 집계됐다. 이 신문의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6개월 만이다.

아베 총리의 개헌 일정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과제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아베정권이 범행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어도 준비 단계에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공모죄’ 취지를 담은 테러대책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것에 대한 반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아베정권은 지난 19일 첫 관문인 중의원 법무위원회에서 주요 야당의 강한 반발에도 이 법안을 힘으로 통과시켰다. 같은 날 국회 앞에서는 시민 1500여명(주최측 추산)이 참가한 법안 반대 집회가 열렸다. 아베정권이 2015년 위헌 논란에도 안보관련법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했을 때도 내각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바 있다.

아베 총리가 골프와 식사를 함께 할 정도로 친한 친구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학법인 ‘가케학원’이 특혜를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악재다.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가 다른 사학법인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아베 정권에 부담이 되고 있다.

도쿄=우상규 특파원 skw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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