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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Life] 이빨 진단서로… '새 52마리 살해' 누명 벗은 풍산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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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 뚫고 들어온 흔적 있는데 X레이·문진 결과 이빨 손상 없어

2심서 '1심 배상 판결' 뒤집어

조선일보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마당 축사에서 개 두 마리를 키우는 이모씨는 지난해 1월 말 아침 풍산개 한 마리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며칠 후 낯선 사람이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인근에서 조류원(鳥類園)을 운영하는 배모씨라고 했다. 그는 "당신 개가 사고를 쳤다"고 했다. 배씨를 따라 집에서 2㎞ 떨어진 조류원을 찾은 이씨는 깜짝 놀랐다. 공작새, 꿩 등 새 52마리가 무참하게 죽어 있었고 조류원 철조망은 동물이 뚫고 들어온 듯한 흔적이 있었다. 배씨는 '당시 풍산개가 들어와 있었다'며 주인 이씨에게 새 값 등 2776만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이씨는 납득할 수 없었다. 조류원은 완전히 낯선 곳이고, 새를 물어 죽였다는 개의 입 주변도 깨끗했기 때문이다. 목에 올가미가 걸려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개 도둑에게 끌려갔다 우연히 들어갔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심에선 '죽은 새 값 1026만원을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배씨가 풍산개가 철조망 안에 들어와 있는 사진을 찍어서 법원에 낸 게 결정적인 증거로 작용했다. 이씨는 패소 후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다가 '배씨 주장을 반박할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문득 생각난 게 철조망이었다. 개가 단단한 철조망을 물어뜯고 들어왔다면 이빨이 상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인근 동물병원에서 X레이 촬영, 문진 등을 한 결과 '골절 등 이빨 손상 흔적은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렇다면 철조망이 어떻게 뚫렸는지가 문제였다. 이씨 의뢰로 사건을 맡은 천안문 공익법무관은 수소문 끝에 이 지역이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을 이장으로부터 확인서도 받아 법원에 냈다.

올해 1월 2심은 1심을 뒤집고 이씨 승소판결을 내렸다. '조류원 내에 개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개가 새를 물어 죽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고 풍산개는 누명을 벗었다.

[양은경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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