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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나? 농구는 30점, 방송은 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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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돈규 기자의 2사만루]

마이크 잡은 '국보급 농구 선수' 서장훈… 방송가 득점원으로 재탄생

"코뼈·목뼈 부러져 지금의 나… 노력이 항상 이긴다"

꿈은 행복해지는 것… 그가 많은 것 이뤘지만 외롭고 쓸쓸했어요

인기·돈·명예 욕심 없어… 더 나은 사람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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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에서 방송으로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서장훈이 서울 상암동 SBS 로비에 앉아 있다. 농구선수 시절에는 승부욕이 강해 ‘서비명(경기 중에 종종 비명을 질렀다)’ ‘목장훈(목을 다친 뒤로 보호대를 찼다)’ ‘밉상(항의가 잦고 투덜거렸다)’ 같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는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싸우던 시절보다 방송을 하고 있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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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농구 인생은 30점짜리입니다." 스포츠계를 은퇴할 때 서장훈(43)이 남긴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승부욕 강했던 207㎝ '국보급 센터'는 "더 노력했어야 했는데 왜 이것밖에 못했을까 후회막심"이라며 2013년 코트를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KBL 최다 득점 기록(1만3231점)과 리바운드 기록(5235개)은 아직도 난공불락이다.

뭍으로 나온 물고기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28m×15m 매끈한 농구 코트에 비하면 세상은 넓고 울퉁불퉁하다. 그런데 그는 지금 종횡무진이다. 방송국으로 무대가 바뀌었고 농구공 대신 마이크를 만진다. 고정 출연 프로그램만 5개. 이 채널에도 서장훈, 저 채널에도 서장훈이다. '미운 우리 새끼' 녹화를 마친 17일 밤 서울 상암동 SBS에서 그를 만나자마자 방송이 농구보다 쉬운지 물었다. 서장훈은 "그렇게 저울질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체력적으로야 농구가 훨씬 어렵죠. 게임 한번 뛰면 3㎏이 빠졌어요. 농구라면 모르는 게 없는 프로페셔널이었지만 방송에서 저는 아마추어죠. 아직도 실수투성이고 적응하는 중입니다."

식스맨, 주득점원으로 거듭나다

―은퇴하고 처음 방송에 나올 때는 '식스맨'처럼 투입된 느낌이었는데 이제 주득점원 아닌가요?

"그래 보이나요? 솔직히 말하면 제게 예능 DNA가 있어서 대중이 관심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캐릭터가 다양해지는 시대고 저 같은 사람을 방송에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신선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농구장에서는 센터를 맡았는데 방송에서는 포지션이 뭔가요?

"짜이지 않은 모습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정형화된 어떤 패턴이나 생각이 아니라 좀 더 솔직한 얘기가 제 입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그대로, 가식적이지 않고 리얼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어느덧 '시청률 보증수표'가 되었습니다. 씨름 선수 출신인 스포테이너 강호동의 길로 가고 있나요?

"(정색하며) 그 형님이랑 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굉장히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경력도 하늘과 땅 차이고 레벨이 달라요. 호동이 형은 온 국민의 MC고 저는 이제 막 운동화를 벗었을 뿐이지요."

서장훈은 은퇴 후 '무한도전' '런닝맨' '무릎팍 도사' 등에 얼굴을 비추다 2014년 '사남일녀'에 고정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무릎팍 도사'에 나올 땐 "예능 프로에서 몸개그를 해달라는 전화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라고 했다.

―농구처럼 방송도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할 텐데요.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 농구를 그만뒀고 아무 계획 없이 쉬고 싶었어요. 친구 만나 술먹고 그동안 못하던 걸 원 없이 해보자 했는데 그것도 힘들더라고요. 농구선수로 27년간 굉장히 규칙적으로 살았던 사람이 불규칙한 '은퇴 이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죠. 시골 버라이어티인 '사남일녀'는 한 달에 4박 5일만 촬영하면 된다며 끈질기게 섭외하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우습고 여행도 하고 루틴도 찾을 겸 그러자고 했지요."

―방송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였나요?

"아뇨. 그 프로는 반응이 신통치 않아 금방 막을 내렸어요. 다시 부탁받고 '무한도전' '라디오스타'에 나갔는데 화제가 되고 그때부턴 섭외가 엄청나게 밀려왔지요. 선수 시절 유명했지만 많은 국민의 지지나 사랑을 받진 못했거든요. 안티도 많았죠. 쓸쓸했어요. 늘 혼자 전쟁터에 나가는 심정으로 농구했는데 방송 몇 번 해보니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겁니다. 오해나 편견을 가진 분들께 서장훈이라는 사람을 정확히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죠."

―농구장 라커룸과 방송사 대기실, 서로 공통점도 있던가요?

"라커룸은 팀 중심이고 대기실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공통점도 굉장히 많아요. 감독이 있듯이 PD가 있고, 선수 선발하고 트레이드하고 자르기도 하듯이 방송도 원하는 사람을 뽑거나 버리죠. 능력에 따른 연봉과 출연료도 비슷하고요. 팀워크가 단단한 프로그램이 더 잘되는 것도 농구와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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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동초등학교 야구선수 시절의 서장훈. 방망이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어깨는 강한 편이 아니었다. /서장훈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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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농구, 다시 공룡 센터로

서장훈은 서울 학동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졸라 야구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프로야구 초창기였다. 야구 명문(선린중)으로 진학했는데 집에서 멀어 친구들과 헤어진 데다 규율이 엄했다. 그는 야구부와 농구부가 다 있는 휘문중으로 전학 가는 과정에서 절차 문제로 일단 농구부원이 된다. 농구라곤 해본 적이 없으니 혼자 보조 골대 앞에서 하루 종일 슛과 드리블을 연습해야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갑자기 키가 자랐다고요?

"고관절이 빠져서 석 달 동안 재활을 했어요. 운동 중단하고 쉬자 13~14㎝가 자란 겁니다. 겨울방학 마치고 중3이 됐는데 키를 재보니 197㎝였어요."

―한국 농구계에 2m 공룡 센터가 나타났다는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

"당시엔 1m90 후반 키는 2m로 기록하는 불문율이 있었어요. 감독님이 저를 보고 흥분하셨어요. 석 달 만에 농구가 쉬워졌어요. 별안간 에이스로 거듭나 중3 때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했지요."

―휘문고에서도 1년 후배 현주엽과 함께 맹활약하며 연·고대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었겠네요?

"운동 마치고 집에 가면 당시 연·고대 감독님들이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고 계셨어요. 하루라도 거르면 상대 학교에 저를 빼앗길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부모님도 키가 큰가요?

"190㎝ 가까이 되는 아버지 유전자를 받았어요. 어머니는 160㎝로 아담하시고 여동생도 167㎝예요."

―결국 연세대에 진학했고 1학년 때 농구대잔치에서 허재·한기범·김유택의 실업팀 기아를 꺾고 우승해 신인상에 MVP까지 받았습니다. 문경은·이상민·우지원과 함께 'F4'로 불렸는데 그 선배들은 요즘 방송하는 걸 보고 뭐라 하나요?

"서로 바빠서 잘 못 봐요. 상민이 형만 가끔 만나는데 제가 생각보다 왕성하게 활동하니까 격려와 지지를 보내주지요."

―부모님에게 방송인 서장훈은 어떤 존재인가요?

"농구선수 서장훈에 대한 자부심이 워낙 강한 분들이에요. 평생 뒷바라지하셨고 인생을 전부 저에게 쏟아부으셨으니까요. 제 방송 활동을 막진 않지만 그렇다고 박수 쳐 주시지도 않아요."

결벽증은 농구가 남긴 흔적

포털 사이트에 '서장훈'을 검색하면 이런 연관 검색어가 뜬다. 6000억, 건물, 재산, 오정연, 키, 나이, 빌딩…. 농구는 저 뒤에 나온다. 대중의 관심사가 무엇이고 서장훈이 방송에서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최근 프로농구 LG 감독에 선임된 현주엽은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우승 한번 하고 난 뒤에 서장훈씨도 오셔서 감독 하면 재미있겠다"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연관 검색어가 있나요?

“없어요. 방송에 노출되는 제 이미지들일 뿐이죠. 저는 농구에 대해서만큼은 조금도 양보가 없었지만, 농구 이외의 것에는 과욕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본의 아니게 건물, 돈, 땅 같은 게 자꾸 부각이 돼 늘 죄송한 마음이에요. 다 웃자고 하는 얘기고, 실제로 어마어마한 부자도 아니고요.”

―이혼의 흑역사도 웃음 소재로 쓰는 열린 자세, 툴툴대면서도 다 대답해주는 태도, 현실감 있는 독설이 매력 같습니다.

“이혼 얘기를 제 입으로 꺼내진 않아요. 저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잖아요. 함께 방송하는 사람들이 웃음 포인트로 삼는데 사실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에요.”

―방송에서 집을 공개했을 때 놀랐어요. 반드시 실내화를 신어야 하고 소변 볼 때는 앉아서, 또 소파에 앉을 땐 옷을 갈아입어달라고 했지요?

“과장된 것이긴 합니다만 제가 깔끔 떨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요. 손님은 아예 집에 들이지를 않지요. 농구 하면서 생긴 결벽증, 강박증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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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아시아프로농구리그에서 서장훈이 중국의 야오밍을 제치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농구가 남긴 흔적이라고요?

“네. 어질러져 있으면 경기 나갈 준비가 안 됐다고 생각했어요. 샤워를 매일 두 번 하는데 할 때마다 색칠 공부할 때처럼 빈틈없이 디테일하게 한 시간 동안 합니다. 혼자만 지키는 루틴이 많아요. 자유투를 던질 때 공을 세 번 튕긴 다음 들어갔다면 그 숫자를 한동안 고집했습니다. 더 이상 안 먹힐 때까지요.”

―왜 그랬죠?

“전쟁터 나가는 장수 심정이랄까요. 목욕재계하고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구도자의 자세로 경기에 임하는 겁니다. 늘 같은 시각에 일어나고 같은 시각에 밥 먹고 같은 시각에 화장실 가고…. 혼자만의 징크스를 쌓아갔어요. 그런 것들이 굳어져 결벽이 된 거죠.”

―농구선수 시절이 가끔은 그립지 않나요?

“저라는 사람, 서장훈의 정체성은 농구인이죠. 은퇴하고 우연히 이 길을 걷고 있지만 뼛속까지 농구인이에요. 방송 3~4년 했다고 연예인 되는 건 아닙니다. 의미없는 얘기죠. 가령 제가 고깃집을 차린다고 해서 정육인이 됩니까? 지금도 농구에 대한 마음은 여전하지만 코트 복귀 문제는 간단치 않아요. 방송도 시청자·스태프와의 약속인데 당장 빠이빠이할 수 없고요.”

―은퇴한 다른 선수들은 농구 코치, 감독, 해설자로 곧잘 돌아가던데요?

“어디서 오퍼가 와서 제가 감독을 한다 쳐요. 그런데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터져 그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그동안 제가 지켜온 농구, 서장훈이라는 자부심이 한순간에 와장창 망가집니다. 다른 스포츠에서 많이 보셨잖아요? 현실적으로 내가 덥석 했다가 저렇게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이 있습니다. 정확한 계획과 확고한 의지가 선다면 모르겠지만.”

―매사에 치밀하게 준비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군요.

“방송 댓글로 ‘서장훈 재미없는데 왜 나오냐’고 욕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가 재석이형 호동이형 동엽이형처럼 청산유수로 재밌게 말하고 모두를 웃길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농구에 대해서만큼은 자존감이 높아요. 농구로 쌓은 명예가 훼손되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는 건 뻥”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농구 결승전을 기억한다. 중국의 NBA 스타 야오밍(2m26㎝) 앞에서 3점포를 꽂아넣고 만리장성을 무너뜨리며 서장훈은 환호했다. KBL에서 15시즌 동안 집중 견제를 뚫고 경기당 평균 20점씩 올리며 코트를 지배했다. 하지만 그는 “나는 30점짜리 선수였다”고 할 만큼 자신에게 야박한 사람이다. 그럼 방송에서는 몇 점쯤 되는지 물었더니 “글쎄요, 100점 만점에 5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짜도 너무 짜군요.

“평생을 한 농구가 30점인데 방송은 5점도 후한 겁니다. 시청자에게 재미와 웃음을 드리려고 평생 노력한 분들의 열정에 비하면 저는 너무도 미약하니까요. 제가 방송 잘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농구를 선택했을 때 꿈은 ‘정말 압도적인,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지요. 이제 시청자를 상대하면서 웃겨야 한다는 강박감은 없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저는 도태될 겁니다. 방송에서 웃기는 게 제 포지션은 아녜요. 포장하지 않은 솔직함, 날것의 느낌을 보여주는 게 양념으로서 제 역할이죠.”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이나 신선미도 반복되고 시간이 흐르면 진부해질 텐데요.

“식상할 수 있죠. 그래서 다양한 생각, 다른 시선을 보태려고 합니다. 방송 없을 땐 집에서 책이나 영화를 보고 신문·잡지를 읽어요. 지금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대중이 재미없다고 한다면 그땐 그만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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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훈은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능숙한 진행과 말솜씨로 팬들을 늘렸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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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장훈과의 인터뷰는 뚝뚝 끊어졌다. 카페나 로비에서 방송 출연자나 스태프가 눈에 보이면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거나 달려가서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김구라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같은 최고의 MC들과 같은 프로를 했거나 하고 있는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제가 운이 좋아요. 그런 빛나는 별 같은 형님들 덕에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분들 삶의 전반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니까요. 뭐라고 조언을 해주지 않아도 언행을 보고 듣기만 해도 공부가 됩니다. 오늘 ‘미우새’에서도 동엽이형이 어머니들에게 말을 걸고 응대하는 방식을 관찰했습니다.”

―어느 방송에서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이긴다’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고 했죠?

“네. 저는 현실주의자예요. 그냥 즐겨서는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없어요. 농구를 좋아했지만 책임감을 느낀 다음부터는 즐긴 적이 없어요.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까지 뛰었고 이기는 게 최고의 팬 서비스였죠. 목뼈 나갔고 코뼈 부러졌고 지금은 무릎 관절이 엉망이에요. 그렇게 올인하고 극한으로 나를 몰아붙여서 그나마 성과를 이룬 겁니다. 즐기면 더 나아진다? 그건 뻥입니다. 농구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앞으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서장훈은 이 대목에서 매우 단호했다. 하루하루 전쟁 같은 승부의 세계, 농구가 그에게 새겨넣은 확고부동한 철학처럼 느껴졌다. 600g 농구공을 놓은 지 4년 됐으니 이제 좀 편안해졌으려나. 정상에 올랐던 농구인으로서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청했다.

“제가 조언할 자격이 되겠습니까마는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말할게요. 자신에겐 냉정하게, 남에겐 관대하게.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한다면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자기한테는 한없이 냉정해야 꿈에 다가가는 길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저한테는 있어요. 무조건 기가 죽을 필요도 없지만 무모한 자신감도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능력이 있는지 냉철하게 파악해야 계획도 세울 수 있어요.”

―방송 데뷔를 안 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요?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하니까 쉬고 있지 않을까요. 농구선수 시절보다는 지금이 마음 편해요. 인기, 돈, 명예, 그런 욕심은 없어요. 저를 잘 몰랐던 분들에게 다가가고 싶고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었다면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 훌륭한 방송인은 제 목표가 아녜요.”

―그럼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요?

“저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려요.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선수 시절에 자유투 1점당 일정액을 적립해 기부하고 한 해 연봉을 쾌척한 적이 있습니다. 농구인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했고요.

“제게 주신 과분한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농구선수 서장훈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면?

“미련이 남고 후회가 됩니다. 좀 더 성숙했더라면 어땠을까. 40대 중반이 되어 돌이켜보니 다 철없던 시절이었죠. 미성숙해서 벌어진 일들이 가끔 떠올라요.”

―미래의 서장훈에게 하고 싶은 말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이뤘지만 진정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려워요. 외로웠죠. 장훈아, 앞으론 행복해지자.”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 물었다. 그는 “지금 내가 가진 피지컬과 운동 능력보다 좋은 체격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다시 한 번 농구를 열심히 해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게 아니라면 농구가 아닌 다른 일을 경험하고 싶단다. 서장훈은 도도한 욕심쟁이였다. 적어도 농구에 대해서만큼은.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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