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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맨손으로 콘크리트 파헤치며… 시리아 내전 3년간 8만명 구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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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대상 영예의 얼굴들]

평화대상 - 시리아 구호단체 '하얀 헬멧'

"총을 들지, 난민이 될지 갈림길서 우린 부상자 나르는 '들것' 선택… 만해賞이 절망의 시리아인 위로"

조선일보

라이드 알 살레 대표


"지금 이 순간에도 시리아에서는 정부군의 전투기 폭격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테러 공격으로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전화받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주십시오."

구호단체 '시리아 민방위(일명 '하얀 헬멧')'의 라이드 알 살레(33) 대표는 지난 15일 전화 통화에서 2017년 만해평화대상 수상자로 '하얀 헬멧'이 선정됐다는 소식에 "큰 영광이지만 수상의 기쁨은 내전이 끝나야 제대로 누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터키 남부 하타이(Hatay)에 나와 있는 그는 이날 본지와 40분간 인터뷰하는 중에도 인터넷으로 시리아에 있는 대원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고 지시도 내리는 등 분주했다.

살레는 "2011년 발발한 내전이 7년째 접어들면서 시리아 사람 사이에선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잊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면서 "만해평화대상 수상 소식은 절망에 빠진 시리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것"이라고 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한국이 주는 평화의 상이라 의미가 더욱 큽니다."

'하얀 헬멧'은 2012년 말 내전 격화에 따라 국제구호단체들이 철수한 후 시리아 시민들이 스스로 결성한 구호 단체다. 살레는 "공습으로 살던 집이 무너졌는데, 도와달라고 할 곳이 없었다"며 "동네 친구들끼리 피해 현장으로 달려가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파헤치며 구조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살레는 원래 전자제품 판매 상인이었다. 동료들도 마찬가지. 교사, 제빵사, 대학생, 택시 운전사 등이다. 빵을 굽다가 사고가 터지면 트럭에 삽을 싣고 현장에 달려가는 식의 구조대였다.

살레와 친구들은 2014년 정식으로 '하얀 헬멧'을 설립했다. 국제구호단체의 도움으로 대원들을 터키로 보내 긴급구조 훈련을 받았고, 살레는 그해에 대원들의 투표를 통해 대표로 선출됐다. 살레는 "하루도 쉬지 않고 구조 현장에 달려갔다"며 "매일이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2014년 북부 도시 알레포에서 정부군 전투기 공습으로 3층짜리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주민들이 건물 안에 열 살 먹은 아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건물 잔해를 16시간 동안 파헤쳐, 하얀 콘크리트 가루에 묻혀 우는 아이를 건져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지난 3년간 8만명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작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알린 '알레포 꼬마' 옴란(5)도 '하얀 헬멧'에 의해 구조됐다. 피투성이인데도 아이답지 않게 눈물조차 안 흘리는 옴란의 모습에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 등 세계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이런 구조 활동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하얀 헬멧'은 시리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동참 희망자가 줄을 섰다. 수십 명에 불과했던 조직이 단기간에 알레포, 다마스쿠스, 이들리브 등 8개 지역에 사무소 100여개를 둔 인원 3000명의 단체로 커졌다. 자원자 대부분은 20~30대 남성이지만, 자식 잃은 50대 부모도 적지 않다. 여성들도 히잡(이슬람식 스카프) 위에 헬멧을 쓰고 현장에 나가 응급 치료를 도왔다.

"이웃과 가족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보통 총을 들거나 나라를 떠나는 난민이 될지 갈림길에 섭니다. 하지만 하얀 헬멧 대원들은 부상자를 나르는 '들것'을 택했습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어느 편이냐"고 묻지 않는다. 정치적 성향, 종교와 종파에 관계없이 어려움을 겪는 이를 돕자는 설립 정신 때문이다. "시리아에서 하얀색은 희망과 순수함을 뜻합니다. 얼룩진 안경을 끼고 사람을 보지 않고 그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에 옮길 때 평화가 찾아오리라는 믿음으로 하얀 헬멧을 쓰고 현장에 달려갑니다. 하얀 헬멧의 중립성을 의심하던 친정부 지지자들도 도움을 받고 나면 '슈크란 자질란(정말 감사합니다)'이라고 말합니다."

살레는 얼마 전 자신의 트위터에 구조 활동 중 목숨을 잃은 동료 사진을 올리고 명복을 빌었다. "전투기가 공습을 하고 1시간쯤 후에 같은 곳을 또 공격합니다. 이 때문에 구조 활동 하던 대원들이 2차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맙니다. 현장으로 달려갈 때 대원들은 항상 죽음을 각오합니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지금까지 하얀 헬멧 대원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크게 다쳤다. 살레는 "내년에는 만해평화대상 수상자가 시리아 내전을 해결한 사람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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