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8 (일)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여성혐오 스스로 공부하는 시민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머니투데이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며칠 후 강남역 10번 출구에 붙은 '포스트잇'. /사진=이동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역 사건' 이후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남성과 여성 구분없이 여성주의(페미니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고, 여성안전 위해 요소를 없애기 위한 관련 예산이 늘었다. 조금씩, 천천히,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 인식변화는 아직도 멀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미니즘 서적 판매 3.7배 늘어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17일 김희영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강남역 사건으로 인해 많은 여성이 충격을 받았다"며 "사건 이후 여성혐오가 (단순한 혐오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늘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일부터 1년 사이 교보문고에서 팔린 페미니즘 관련 도서는 전년 동기 대비 3.7배 늘었다. 페미니즘 도서 구매자의 성별과 연령대를 분석해보면 20대 여성이 41.1%로 가장 많았다. '2016 알라딘 올해의 이슈' 1위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12.01%)이었다.

◇여성과 남성 구분없이 여성주의 공부

자발적 공부를 통해 여성혐오에 대해 더 민감한 안테나를 세우는 시민도 늘었다. 2012년 초부터 여성단체 활동을 해왔다는 직장인 A씨(여·27)는 강남역 사건이 여성주의 인식 변화의 촉매제가 됐다고 말했다. "예전에 친구들에게 페미니스트 강의를 같이 들으러 가자고 하면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강남역 사건 이후 달라졌다"며 "나에게 페미니스트 용어나 운동에 대해 묻기도 하고,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페미니즘 서적을 찾아 읽고 강의를 들으러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이 던진 '여성주의' 화두는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대학생 B씨(25)는 "예전엔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친구들이 '여혐'(여성혐오)자가 아니라 여성차별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강남역 사건 이후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는 친구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여성혐오나 차별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여성에 비해 '제3자'라고 스스로를 규정하던 남성들이 여성차별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서초구, 재발방지 위해 39억여 원 투입 예정

여성 안전환경을 위한 구체적 대책도 진행 중이다. 강남역 사건 장소의 관할지역인 서초구는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쓰고 있다. 화장실에 비상벨과 CCTV(폐쇄회로TV)를 설치하는 등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해 총 39억여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서초구는 지난해 5월 사건이 발생한 다음달인 6월부터 관내 전체 공공·상업용 건물 1049동의 화장실을 직접 방문, 전수조사했다. 전수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8억2000여만원을 들여 비상벨 348대와 CCTV 39대를 설치했다.

1년 전 강남역 사건이 발생한 노래방 건물의 해당 화장실은 남녀 출입구를 따로 나누고 비상벨이 설치됐다. 서초구는 현재까지 안전환경 조성을 위한 예산을 31억원 확보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3.7배 늘어난 수치다.

머니투데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징역 30년을 확정받은 범인 김모씨. /사진=이동훈 기자

◇아직도 멀었다…대책만큼 꾸준한 인식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대책뿐만 아니라 궁극적 인식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응책 마련에도 아직도 '무섭다'는 반응들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남녀 구분된 실내 화장실이 있는 곳만 약속장소로 정한다는 직장인 C씨(여·26)는 "비상벨을 아무리 많이 설치해도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인숙 건국대 여성학과 교수는 "여러 가지 대책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궁극적 인식의 변화"라며 "인식 변화가 없으면 여성뿐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통과 공감능력을 갖추고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인식 개선 작업이 시간을 두고 진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은 지난해 5월17일 오전 0시33분쯤 평소 조현병을 앓던 김모씨가 강남역 근처 노래방 공용화장실에 들어가 앞서 들어온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30여분이 지난 오전 1시7분에 들어온 여성 A씨(사건 당시 23세)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여성혐오에 의한 '여성살인'(페미사이드·femicide)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편 대법원이 지난달 13일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확정한 가운데 지난 16일 피해자 A씨 부모는 범인 김씨를 상대로 5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슈팀 한지연 기자 vividhan@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