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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세월호 참사 계기로 블랙리스트 시작됐다”···전직 문체부 실장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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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황병헌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78)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1)의 9차 공판에 최규학 전 문체부 기획조정실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이 같은 내용을 말했다.

최 전 실장은 문체부 내에서 블랙리스트 관리·적용에 미온적이라는 이유로 2014년 9~10월 김 전 실장 등으로부터 ‘찍어내기’ 당해 강제 사직했다고 알려진 당시 문체부 1급 공무원 3명 중 한 사람이다.

최 전 실장은 2014년 초 청와대로부터 문체부에 블랙리스트가 처음으로 전달된 상황을 설명했다. 최 전 실장은 “2014년 6월 김소영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 문화체육비서관이 조현재 당시 문체부 1차관을 불렀고, 조 차관이 김 비서관을 만나 가져온 것이 최초의 블랙리스트 명단이었다”고 증언했다.

최 전 실장에 따르면, 조 전 차관이 해당 블랙리스트 명단을 당시 유진룡 문체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최 전 실장은 “유 전 장관이 ‘문화예술인을 배제하는 것은 심대하고 중대한 문제이니 문화계 적용이 어렵다’고 말했다”면서 “기본적으로 문체부 내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을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실현을 위해 통합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 블랙리스트를 적용하기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증언했다.

최 전 실장은 앞서 김 전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온 이후부터 이른바 ‘문화예술계 편가르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실장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오면서 ‘문화예술인들을 편가르기 하라’, ‘내 편에 대해서만 지원하라’는 이야기들이 문체부에서 많이 나왔고, 특히 유 전 장관에게 (해당 지시가) 많이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유 전 장관은 2014년 1월21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독대 보고를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유 전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장관직을 요청할 당시 “당신이 문화예술계를 통합해 잘 이끌어 달라”고 한 말을 언급하며 ‘문화예술계 편가르기는 부당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실장은 유 전 장관의 대통령 독대 이후 청와대의 부당 지시가 줄어들었다고 증언했다.

독대가 있고 나서 세달 뒤쯤인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상황은 반전됐다. 최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블랙리스트’가 본격적으로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 전 장관과 박 전 대통령의 독대 이후 큰 문제가 없었는데 세월호 참사가 ‘변수’가 됐다”고 말했다.

최 전 실장은 “문화 정책은 사회적 치유 등 중요한 역할을 많이 한다”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문화예술인들이 학생들의 트라우마와 주변 친지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이를 해소하는데 앞장섰다”고 말했다. 이어 “‘그 분’들은 그러한 문화예술인들을 비판적으로 봤고, 그 때부터 이런 ‘블랙리스트’ 문제들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참사 당시 미숙한 구조 활동 등으로 비판 받던 정부 입장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문화예술인들을 ‘눈엣가시’로 여겨 지원 배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최 전 실장의 설명이다.

최 전 실장은 “사회적 약자인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것은 30년간 공무원으로 살아오면서 국가로부터 교육 받은 것”이라며 “문체부가 그러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정권에는 좀 밉보인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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