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페이스를 보여주는 1900년 미국 쇼 포스터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캡션: 블랙페이스를 보여주는 1900년 미국 쇼 포스터
“불과 몇 주 만에 또 ‘블랙페이스’에요. 지금 소셜미디어에서 한국이 이렇게 인종차별적이었냐고 아우성이에요..”
얼마 전 우리 영어신문의 경제뉴스 에디터인 미국인 모니카 윌리엄스가 이렇게 말하며 이미지 하나와 외국인들의 코멘트를 보여주었다. SBS 코미디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의 한 장면을 캡처한 것이었는데, ‘아프리카 원주민 분장’으로 얼굴을 검게 칠한 개그우먼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모니카가 “또”라고 한 것은, 지난 3월, 인기 걸그룹 마마무의 뮤직비디오와 콘서트도 K-팝 팬들 사이에 문제가 됐기 때문이었다. 브루노 마스의 뮤직비디오 장면을 재현하면서 얼굴을 검게 칠한 것이다.
사실 배경지식이 없으면, ‘웃찾사’의 분장은 희화화가 뚜렷하지만, 마마무의 분장은 오마주인데 그게 왜 모욕적인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계 등 타인종이 아프리카계로 분장하면서 얼굴을 검게 칠하는 것은, 19세기 미국의 흑인 희화적인 쇼를 통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사진) 그런 분장행위가 ‘블랙페이스(Blackface)’라는 한 단어의 고유명사가 되어 그 자체로 인종차별적 함의를 품게 됐고 그 후 어떤 맥락에서건 금기시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걸 모르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정말 고쳐야 할 일 맞습니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악의 때문은 아닐 거예요. 그냥 국제적 예의나 금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심지어 어떤 한국인들은 자신 포함한 아시아인을 눈 양쪽으로 찢어진 모습으로 표현하는 게 뭐 대단한 문제냐고 하니까요. (실제로 인터넷 포털에서 이런 말 여러 번 봤다.) 시각적 언어의 인종차별 함의와 그 심각성에 대해 둔감한 거죠.”
모니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흑인으로서 서울 거리를 다니면서 불쾌한 일을 겪은 적은 잘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친절합니다. 하지만 잘 모른다는 건… 한국 연예계가 늘 그렇게 말하면서 사과해 왔는데, 그리고는 다시 반복되니 더 이상 변명이 안 됩니다. K-팝은 미국 흑인 음악에서 영향 받은 게 많고 미국 흑인 뮤지션들과 협업도 많이 해요. 그러면서 계속 모른다니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가지고, 클릭 한 번만 해도 이런 건 알 수 있잖아요.”
이런 대화를 주고 받으며 한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은 그간 ‘세계화’를 외쳐왔고 경제교역과 한류와 인터넷 연결로 충분히 세계화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적으로 세계시민 의식은 충분치 않다는 것을.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를 통해 뜻하지 않게 세계적 센세이션이 되는 것을 목격하고 또 그것을 기뻐하며 외국인을 붙잡고 ‘두 유 노 싸이?’를 물으면서도, 블랙페이스 코미디나 뮤직비디오가 같은 식으로 국경을 넘어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건 미처 생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강남스타일’ 또한 과연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외국에서 히트 쳤는지 후속 연구가 필요한데, 동상까지 세워 축하하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을.
결국 물의와 사과를 반복하면서도 또 튀어나오는 ‘검은 얼굴’은 이렇게 ‘국위선양’과 경제이익에만 초점을 둔 한국의 선택적 세계화가 초래한 민낯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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