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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책과 삶]광기의 뿌리, 몸과 마음 넘어 사회와 문화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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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문명…앤드루 스컬 지음·김미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 708쪽 | 3만8000원

“광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 어디서나 발견되는 현상이며, 이 현상은 사회구조, 안정된 사회질서라는 관념 자체에 실제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중대한 도전을 제기한다.”

경향신문

영국 화가 리처드 대드의 ‘나무꾼 요정의 절묘한 솜씨’(1855~1864, 테이트갤러리 소장). 장래가 유망했던 대드는 아버지를 살해한 뒤 악명 높은 정신병자 수용시설 베들램에 감금된다. 현미경을 써야만 보일 만큼 극도로 세밀하게 그리는 것이 대드 작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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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기와 문명>의 서문은 저자 앤드루 스컬이 제목에 들어갈 단어로 정신질환, 정신장애 대신 ‘광기’를 택한 이유에 대해 부연하며 시작한다. 그가 책에서 그려내려는 광기는 정신병리적 ‘증상’ 너머, 시대와 대륙을 불문하고 사회가 규정해온 모든 ‘비이성’을 포함한다.

앤드루 스컬은 <광기의 박물관> <가장 고독한 고통> 등의 저서를 통해 세상이 ‘광기’를 지닌 사람을 어떻게 규정하고 원인을 규명하며, 어떤 방식으로 치료해왔는지를 40년간 추적해온 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40년간 추적의 역사를 정리해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중세부터 20세기까지를 다뤘다면, <광기와 문명>은 고대에서부터 21세기까지 이어져온 ‘광기의 역사’를 살펴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성서 속 구약시대 히브리의 선지자들로부터 고대 그리스 비극 속 주인공, 중세시대의 마녀, 그리고 현대의 ‘정신병자’들에 이르기까지 사회가 광기를 바라보고 다뤄온 자취를 짚어간다. 그리고 ‘광인’들 자체보다는 그들을 둘러싼 ‘정상세계’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취급하는지를 살핀다.

경향신문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은 때로 동시대인들로부터 광인으로 치부당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했음을 알린 예레미야는 반역자로 모욕당하고 목에 나무고랑을 찼다. 인간인 영웅이 신이 내린 엄혹한 운명 앞에 광인이 되고마는 스토리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단골 소재이자 당시 사람들이 광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반영하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주의자들은 이런 경향을 비꼬아 “환자가 염소를 흉내 내거나 으르렁거리거나 (…) 그들은 신의 어머니 탓이라고 말한다”고 적기도 했다. 대신 그들은 ‘체액의 불균형’이 광기를 발생시킨다고 믿었다.

하지만 광기를 비이성적인 앎의 수단으로서 ‘영감(inspiration)’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플라톤, 소크라테스적인 해석은 “바쿠스신의 관능적, 창조적, 예언적이고 변태적인 방식으로 이성이 앎으로 가는 왕도를 제공하는 것”으로 광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이런 인식은 에라스뮈스의 <우신예찬>, 셰익스피어의 광적인 연인들, 세르반테스, 도스토옙스키로 이어져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광인은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들은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받았다. 이런 ‘배제된 자’들을 모아 수용하는 시설은 입원 등이 가능한 ‘종합병원’이란 개념이 나온 것과 동시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8세기 무렵부터 퍼져나가기 시작한 광인 병원의 모습은 중세에 들어 신앙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교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수용시설이 본격화되면서 ‘대감금’ 시대라고 불리는 17~18세기엔 영국에 광인 수용을 통한 수익으로 돈을 버는 광증업(lun acy)이 생겨나고 차마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생활이 ‘정신병자’들에게 가해진다. 당시 감금됐던 일부 화가 등은 지옥같은 수용소를 빠져나온 후 그 경험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했고 이런 창작물은 큰 인기를 얻었다. 영국 총리의 아들 존 퍼시벌(1803~1876)은 “(그들은) 마치 내가 가구 한 점, 판단력뿐 아니라 욕망이나 의지도 없는 목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했다고 시설 생활을 회상했다.

20세기 전후(戰後)에도 광증으로 돈을 버는 이들은 존재했다. 제약회사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등 신경증에 잘 듣는 약을 이것저것 쏟아내기 시작한다. 수용시설의 잔인성에 대한 인도적 문제제기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부유한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호텔급 ‘고급’ 요양시설들이 생겨난다. 대신 수용시설의 축소로 인해 ‘돈이 안되는’ 정신병자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온다.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은 기계적으로 최단시간에 개인의 정신 상태를 ‘병’으로 진단하고 돈을 뽑아낼 수 있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서 21세기 광증업에 기여한다.

현대 의학은 광기를 생물학적인 차원에서 규정, 정의하고 치료하려 애쓴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학과 사회적인 것의 뿌연 혼합물 속 어딘가”에서 광기의 뿌리를 찾는다. 그리고 저자는 ‘광기’를 넓은 시공간에 펼쳐놓고 광의로 접근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다양한 의미를 고찰해볼 수 있게 한다. 특히 이 책은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풍부하게 담아내면서도 경제적 측면의 고찰 역시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존 정신질환을 다룬 저서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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