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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다시 쓰는 입양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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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남의 아이를 내 자식으로 삼는다’가 아니라

새롭게 부모-자식 관계 맺음이 입양이다


한겨레21

다엘이 국어사전에서 ‘입양’이라고 적힌 곳을 가리키고 있다. 진짜 ‘입양’은 친권을 옮기는 법 절차를 통해 부모-자식 관계를 새로 맺는 것이다.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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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함께할 이들이라면 나는 그들에게 간략히 내 삶에 대해 얘기한다. 사별, 이혼, 입양에 대해서. 조금씩 얘길 한다거나 대충 넘기기엔 불편하기 때문이다. 다루기 힘든 주제일수록 분명한 표현을 써야 한다고 믿는다. 입양부모가 ‘너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하면 아이는 실제 엄마 가슴에서 자신이 태어나는 해부학적 상상을 한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확한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이다.

언어감각이 날로 성장하는 다엘이 어느 날 사전을 뒤적이다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입양의 뜻이 왜 이래? 남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것이 입양이래!”

나와 얘기를 나눈 뒤, 다엘은 출판사 편집부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 국어사전을 보다가 입양이란 말의 뜻을 봤는데요. 설명이 잘못 나온 것 같아서 전화했어요. 남의 아이를 자신의 자식으로 삼는 것은 입양이 아니라 납치거든요.” (주변 사람이 ‘납치’라고 한 말을 듣고 바로 인용하는 민첩성!)

전화를 건네받은 내가 잘못된 정의에 대해 얘기했다. 편집자는 혹시 대안이 되는 견해가 있는지 물었다. 먼저, 입양은 ‘남의 아이’를 대상으로 하지 않음을 말했다. 출산했다고 해서 아이가 자동적으로 그의 소유물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식으로 받아들여 부모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하겠다고 할 때 비로소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입양의 정의는 ‘아이에 대한 친권을 옮겨오는 법 절차를 거쳐 부모-자식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입양뿐 아니라 죽음에 대해 아이들에게 말할 때도 먼 여행을 떠났다거나 영원히 잠들었다고 하면 여행이나 잠에 대해 공포심을 갖거나 죽은 이가 자신을 버렸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11년 전, 3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딸 민이의 얘기는 우리 집에서 금기 사항이 아니다. 민이의 앨범은 쉽게 손이 닿는 곳에 있어 가끔 다엘이 꺼내보기도 하고 질문도 한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다엘이 말했다.

“옛날에 민이 누나 말고 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네! 그런데 엄마한테는 민이 누나가 아니라 네가 주인공이야. 원래 주인공은 나중에 나오고 끝까지 가는 거거든.”

“그런가? 그런데, 혹시 내가 민이 누나 아니었을까?”

전에 읽은 책 내용과 다엘의 말이 겹치며 가슴속으로 훅 들어왔다. 베트남 스님 틱낫한의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 유산된 사람은 나의 형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오려 했지만 아직 조건이 성숙하지 않아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또 다른 나였을까?”

언젠가는 다엘이 이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엄마는 민이 누나가 좋아, 내가 좋아?”

“당연히 네가 좋지! 민이 누나는 갔고 넌 왔잖아. 난 오는 게 좋거든.”

“앗싸~!”

내 마음속 민이는 더 이상 나 자신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아이의 육신이 세상을 떠났기에 현실 속 비교 대상을 넘어서 늘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생후 4개월의 작은 아기로 내게 온 아들이 이제 10대 소년이 되었다. 가슴으로 품은 아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놓고자 한다.

정은주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웰다잉 강사

*‘내 사랑 다엘’은 딸이 뇌종양으로 숨진 뒤 비혼이 되었고 아들을 입양해 키우는 정은주씨의 육아 칼럼입니다. <씨네21> 김성훈 기자와 경제학자 우석훈씨와 함께 3주에 한 번 육아 칼럼 필자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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